출판계 동향 - TV, 책을 만들다

#1. 「베토벤 바이러스」-이 드라마는 ‘강마에’ 열풍을 일으키며 20%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는 서점가에도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베토벤 전문가 조셉 젤리네크가 쓴 『10번 교향곡』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 놓았다. MBC프로덕션은 “클래식 상식과 드라마 제작과정을 담은 『베토벤 바이러스(가제)』를 오는 12월 중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 「차마고도」-차마고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는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지난해 제35회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프로그램은 양질의 콘텐츠를 살려 방영과 동시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책은 내레이션을 최대한 절제했던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살려 많은 사진을 통해 차마고도의 역사에 대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보여준다. 두 콘텐츠는 출판과 방송이 각각의 특징을 살리며 서로를 보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대전시 대덕구는 ‘TV를 끄고 책을 펴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의 구호를 보면 미디어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멀티미디어 사회에서 ‘TV’와 ‘책’은 서로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듯 느껴진다. 사람들이 방송을 시청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과 책은 공존할 수 있다.

위 사례처럼 최근 드라마, 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방송프로그램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영상매체에서는 정보가 단편적으로 제공, 습득될 수 있는 데 반해 문자매체인 책은 이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이를 “미디어가 서로를 보완하는 크로스미디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자가 주를 이루는 책이 현대사회에서는 이미지와 결합해 영상적 어법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송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은 화면을 캡쳐해 도판 자료를 풍부하게 이용하면서 영화적 구성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라디오에 비해 방송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내는 경우가 잦은 것도 현대 독자들이 영상매체의 문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인기를 끈 방송프로그램은 내용의 신뢰성을 담보로 기본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 매력적인 기획 아이템이 되고 있다. 시청자의 감성을 일깨우며 ‘5분의 감동’이라 불리던 EBS의 「지식채널e」는 지난해 『지식e-시즌1』로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현재 3권까지 출간된 『지식e』시리즈는 총 25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식e』시리즈를 기획한 북하우스 김소영 기획팀장은 “「지식채널e」는 콘텐츠가 충실하면서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다”며 “방송과 출판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의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방면에서 사용할 때는 각 매체의 특성을 살려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e』시리즈의 경우 영상미학을 강조한 방송과 달리 관련 맥락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소영 팀장은 “방송과 책의 교집합을 줄여 방송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독자들이 책으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식e』시리즈 3권은 방송내용에 충실했던 1, 2권에 비해 관련 맥락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4권 또한 3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돼 내년 2월 출간될 예정이다.

이같은 경향이 국내 출판계에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방송프로그램이 책으로 출판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출판평론가 표정현씨는 지난 4월호 「방송문예」에서 “방송과 책이 엄연히 다른 매체임에도 매체 각각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방송프로그램이 책으로 표현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출판행태는 책의 내용을 배제한 채 ‘이익’만을 좇는 인기편승주의로 비칠 수 있다. 그는 “방송프로그램이 책이라는 다른 매체로 나타날 때에는 새롭게 선보일 만한 가치와 의미가 충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과 책의 상생 모델로 『지식e』시리즈, 『역사스페셜』 등을 들며 “책이라는 매체 자체의 독자적인 논리와 문법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달콤한 나의 도시』, 『바람의 화원』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다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책은 드라마의 소재가 됐고,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다시 책으로 이끌었다. 영상과 문자로 구현된 콘텐츠의 다른 매력이 서로를 도운 것이다. 동일 콘텐츠라도 영상매체와 문자매체가 각각의 매체 특성을 살릴 때 서로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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