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 16좌 완등 산악인 엄홍길 대장 인터뷰

사진: 「마음의숲」 제공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길들은 어느 것 하나도 순하지 않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길들은 문명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문명세계와 문명세계를 잇는 길들은 히말라야를 넘지 못했다. 문명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길 끝에 다다를 때마다 모든 것은 막막했고, 흰 산들이 언제나 그 막막함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 문명의 길을 개척하고 히말라야를 정복한 사람이 있다. 25살에 에베레스트에 첫 도전장을 내민 이후 무려 20여년간 한시도 쉬지 않고 히말라야에 도전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지구 상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모두 오른 엄홍길. 『대학신문』은 지난 10월 그를 만났다.


2008년 10월 9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산악인엄홍길전시관’에 도착했다. 누렇고 허름한 타일로 도배된 전시관의 외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초라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원으로 보이는 늙은 사내가 낡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시관에는 엄홍길이 히말라야를 오르며 사용했던 각종 물건들이 여기저기에 산만하게 배치돼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중 엄홍길이 도착했다.

‘아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진정 엄홍길이란 말인가!’ 몸은 비록 땅땅해 보였지만 170cm가 채 안돼 보이는 작은 키, 꾀죄죄한 피부, 주름진 얼굴을 한 이 사람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전시관 근처에 있는 도봉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봉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도봉산을 바라보며 그저 걷고 걸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기자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도봉산. 엄홍길을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키워준 산은 에베레스트도 안나푸르나도 아닌 도봉산이다. 소년시절 엄홍길은 도봉산에 살면서 놀고 일했다. 도봉산이 이 소년을 품고 길러서 세계의 정상으로 밀어 올렸다. 엄홍길이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모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도봉산의 힘이다. 엄홍길에게 도봉산은 어머니의 산이며 근원의 산인 것이다.

도봉산 등산로에 도착해 비로소 그에게 말을 건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산을 배우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산은 오르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서는 것이라고. 산 정상에 서 있어도 산 아래 서 있다는 것. 비로소 산을 이해하게 되면 그런 경외감과 겸허함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가면서 도전은 늘 필요하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한 경외감과 겸허함이 없다면 그 도전의 대상인 정상은 오직 욕심과 욕망의 봉우리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산에 오르십니까. 그렇다면 기자는 왜 사는가. 엄홍길이 기자에게 되물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기자를 바라보며 엄홍길이 말했다.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되묻는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이 나에게 존재의 이유이며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태어났으므로 살아야하는 것처럼 거기 있기에 오르는 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어느 작가처럼 산이 없으면 나는 내가 아니다.

엄홍길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다. 히말라야 죽음의 지대라고 불리는 8,000미터에 이르면 전 세계 산악인의 시신들이 즐비하다. 정상을 오르내리다가 불의의 사고로 쓰러져 죽은 그들. 그들은 왜 그토록 춥고 위험한 곳에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갔을까. 그곳에 오르는 산악인들은 오직 명예로운 자신만의 정상을 갖기 위해 올라간 게 아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설산, 너무 눈부시고 하얘서 차라리 검은 고독, 그 영혼의 맑고도 투명한 순결성과 드높은 정신에 도달하고자 고통을 무릎 쓰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산악인들은 바로 그런 공간을 꿈꾸어 왔고, 마침내 정상이 아닌 정신의 정점에 우뚝 서는 것이다.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 매번 산행을 위해 식량과 장비를 준비하는 순간에도 나는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린다. 돌아서라고 발목을 붙잡는 유혹들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어느새 난 또 산 아래 서있다. 나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정이 눈처럼 꽁꽁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 나도 먼저 떠난 동료들처럼 산에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산을 향해 발을 뻗고 있는 나는 미친놈이다.

나는 장애인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다 얻은 동상으로 오른쪽 발가락을 절단했고, 안나푸르나를 오르다가 발목이 180도로 돌아가는 부상으로 다리에 쇠핀을 박았다. 지금도 오른발 뒤꿈치는 땅에 댈 수 없다. 경사면을 오를 땐 발 앞부분으로 걸어야 한다. 가끔씩 다친 다리의 발목과 골반이 쑤시고 아프다.

그렇지만 나는 오른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목숨을 거는 한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8,000미터를 오르다가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본다. 지난해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8,000미터 산정 높은 곳에 쓰러져 있는 꽁꽁 얼어붙은 그들의 정신은 은처럼 빛난다.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높은 사람들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물었는가. 동료가 죽었다. 차가운 히말라야의 정상에서.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영원한 산사람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있어. 넌 잘해낼 거야.” 나의 믿음대로 동료는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기쁨도 잠시, 동료는 산을 내려오던 중 조난을 당해 줄에 매달린 채로 죽음을 맞았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후 한 산악인에게 동료의 시신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를 데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동료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동료를 데리러 갈 대원들을 꾸렸다. 그동안 함께했던 많은 산악 동료들이 망설임 없이 원정대로 들어왔다. 히말라야 정상에 누워있는 동료를 보는 순간 그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동료는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내려가자! 이제 그만 가자….’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동료는 내려가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동료의 시신을 그곳에 묻었다. 아니 바로 내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인생의 반을 히말라야에서 살았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히말라야의 신이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주었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가서 그 일을 하라고 살려 준 것이다. 그 일은 바로 나눔이다.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들,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아이들을 돕고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일이다. 내가 앞으로 올라가야할 산들은 바로 이웃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의 산이다. 어쩌면 그 산은 히말라야보다 더 높을지 모른다.

지난 5월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꿈과 희망, 불굴의 도전정신, 서로 돕고 협조하는 나눔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될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오르고 올라 16좌를 완등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첫째로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후배 동료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이 세상에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히말라야의 8,000미터 고봉을 올랐듯이 이제는 내 인생의 8,000미터 산을 오르려고 한다. 그 목표를 향해, 꿈을 향해 또다시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진행된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미소를 보이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이 죄의식이 그의 힘이고 그는 또 산에 오른다.

※ 인터뷰 내용 중 일부는 엄홍길 자서전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마음의숲, 2008)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인터뷰: 송성환 편집장, 글: 이준수 부편집장, 사진: 김지민 기자, 「마음의숲」 제공, 그래픽: 김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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