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김경주 지음┃문학과 지성사┃168쪽┃7천원 

젊은 시인 그룹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김경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기담』이 출간됐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는 시집으로는 드물게 1만부나 판매된 바 있다.

시가 난해할 수 있음을 각오한 독자에게도 “ = 비는 현역이고 노랑은 비에 편입했다 = 아저씨 좀더 해주세요 = 뼈에 붙은 맛있는 불빛”(「이꼬르들의 천식」에서) 같은 시구들은 당혹스럽다. 시인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문법에 맞게 엮어놓아 더 낯설게 느껴진다. 문학평론가 강계숙씨는 이에 대해 “상투화된 체계로서의 언어가 전달해야 할 것을 전달하지 못하는 파편으로 전락한 과정”이라며 “시인은 언어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집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기이하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인 시인은 이번 시집에 희곡의 형식을 도입했다. 시집은 총 3막으로 구성돼 있으며 독자는 시집의 첫 시를 읽기 전 “때: 알 수 없는 사이/ 공간: 언어의 공동(空洞)/ 등장인물: 미지의 혀”라는 극형식의 글을 먼저 만난다. 파격적인 형식은 시집의 도처에 발견된다. 왼쪽 페이지는 빈 페이지이고 오른쪽 페이지 아래에 달랑 “딸깍!/ 흡연(吸煙) 구역”(「다섯 개의 물체주머니를 사용하는 자연시간」에서)이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프리지어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시집 안에 다시 시집의 표지를 넣고 그 안에 시를 실은 경우도 있다.

강 평론가는 “이 시집에서 도입한 극 언어는 기존의 언어가 자부하는 논리적 자명성이 어떻게 그 근본에서부터 헛것인가를 입증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논리의 추구가 비논리를 낳고 인간적인 것의 신봉이 비인간성의 전형이 되며 부단한 삶의 행보가 죽음 앞에서 무로 전락하고 마는 현실을 세계의 참모습으로 체험케 하는 내적 형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심미적 모험가는 앞으로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헛것의 비극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헛것인 지금, 무지개 속에 뼈를 남기는 편이 낫다고 믿었다”(「연출의 변」 에서)는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처럼 “내내 이 착오를 완성하고 그 미개로 죽겠습니다”(「프리지어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에서)라고 죽을 각오를 했으니까. 유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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