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도 신입 기자들을 선발했다. 이번 기자 선발 논술 시험의 주제는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에 관한 것이었다.

구멍 뚫린 방안에 한명의 피실험자와 몇 명의 실험 공모자가 모여 있다. 구멍을 통해 연기를 들여보내자 사정을 모르는 피실험자는 불안해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애써 상황을 무시한다. 혼자서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는? 당장 뛰쳐나가 도움을 청했다.

요약하자면 개인의 판단이 주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대열을 무너뜨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이 때문에 때론 생존의 위협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논술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을 논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같은 주제를 다루는 논술의 답안들은 서로 대동소이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묻어가기’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 왔다, 주된 의견 앞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금기시 돼 왔다 등등.

왜 그런 걸까. 이런 현상이 정말 우리나라에만 유독 심한 걸까. 혹자가 말하듯 한국인에게 ‘전체주의적’ 민족성이라도 뿌리박혀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n번째 염색체에 그런 유전자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gene의 문제라기보다 meme의 문제, 즉 전적으로 사회적인 현상이다.

생각해보면 앞선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은 아주 특별한 것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의 깊게 생각하기보다 주변 상황을 보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은 사회적 진화와 학습의 결과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차일디니는 이를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가장 많이 팔렸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를 사듯 주류의 의견에 편승하는 것은 선택에 필요한 시간과 고민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보았듯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대세’가 항상 옳을 수는 없는 데다 오히려 ‘조작’의 가능성을 크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논술에서 제시된 해결방안들을 살펴보면 이번에도 꽤나 비슷했다. 스스로가 사회 문제에 대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것,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당당히 자기 의견을 피력할 것,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고 토론식 교육을 도입할 것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얼마나 어렵고 또 피곤한 일인지 역시 잘 알고 있다. 군중의 벽을 뚫는 일은 강한 신념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정말 목숨을 걸 각오가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지금껏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나도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유독 강했던 것은 우리가 ‘하나의 답지’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황이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몇 안 되는 언론이 여론을 장악하고, 정부는 자신들이 선택한 답지를 유일한 정답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진행 중이다.

그 울타리가 완성되고 난 뒤에 그것을 깨뜨리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투쟁 100일째를 넘긴 YTN 사태, 유례없는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와 채택 압박, KBS의 자율성 침해 문제를 우리가 눈에 불을 켜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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