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KBS」 ‘독립영화관’에서 안슬기 감독의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를 보게 됐다. 비록 감독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고 아는 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 영화가 어찌나 감명 깊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것이 마지막 방송이라는 자막이 떴다. 아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푸딩을 맛보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술 더 뜨려는 순간 그릇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후에 따로 독립영화를 찾아서 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영화가 참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영화제를 찾아야만 간신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때문에 2007년 11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중앙시네마에서 「은하해방전선」을 시작으로 오픈한 일은 중요한 ‘사건’ 이었다. 이제 그곳에 가면 항상 한국의 독립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멀티플렉스’라는 공룡이 모든 것을 먹어 치워 때깔 좋게 황량한 그곳에 ‘인디스페이스’라는 작은 오아시스가 생겼으니 ‘좋지 아니한가’.

이명박정부에게 돈이 안되고 실용적이지 않은 독립영화 따위가 반가울 리 없다. 그들의 사전에 ‘문화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리라고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역시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독립영화협회가 거대권력이고 좌익단체이니 돈줄을 끊으라고 대놓고 요구하고 했다.

이런 와중에 영화계를 이끌고 방패막이가 돼야 할 영화계의 수장인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마저 망언을 늘어놓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홈런을 잘 치는 홈런타자를 더 지원하겠다”고 했다. 돈 되는 영화를 돕고 돈 안되는 영화는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강한섭 위원장은 야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야구는 홈런만 잘 치면 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1992년 빙그레의 장종훈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40개가 넘는 홈런을 치는 기록을 세웠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롯데가 차지했다. 야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투수도 잘 던져야 하고 발 빠른 주자도 있어야 하고 좋은 수비도 있어야 한다. 그뿐인가, 감독과 코치진의 지휘가 있어야 하고 경기운영과 연습을 돕는 많은 보조 인력도 필요하다. 그 모든 요소들이 조화돼야 명경기가 나오고 관객도 즐겁다.

얼마 되지도 않는 소규모 극장, 독립 영화들을 다 내팽개치고 무슨 칸영화제를 넘어서는 영화제를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는 스포츠가 아니고 앵벌이 수단도 아닐 뿐더러 영화제는 경시대회가 아니다. 오호통재라, 이명박도 강한섭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우리 손으로 뽑았구나. 임기가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참 많이도 남았다. 그렇다면 심기일전!

 안경배
 법학부·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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