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사태의 시작과 끝, 그리고 미래
이랜드 사태의 시작과 끝, 그리고 미래
  • 위현복 기자
  • 승인 2008.11.23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 한발씩 양보, 500여일 만에 이랜드 사태 타결
여전히 풀리지 않는 다른 비정규직 문제들, 정부 대책 미흡해
사진: 홈플러스테스코 제공
지난 14일(금)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이랜드노조)과 학생 등 300여명이 홈플러스 상암월드컵점 앞에 모였다. 홈플러스 상암월드컵점은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전인 지난해 6월 이랜드의 해고통보에 반발해 이랜드노조원들이 30여일간 파업과 농성을 했던 곳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된 후 138일 동안 천막농성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전과 달랐다. 파업이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515일 만의 타결…519일 만의 출근=이랜드노조 지도부 4명은 지난 13일 ‘홈에버(모회사 이랜드리테일)’를 인수한 ‘홈플러스 테스코(홈플러스)’ 경영진과 노사합의 조인식을 열고 파업종결을 선언했다. 홈플러스 측은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화 및 고용보장 △추가적인 외주화 계획 취소 △파업 도중 해고된 28명 중 16명 복직 등을 약속했고 이랜드노조 측은 △이랜드노조 해산 △이랜드노조 지도부 12명 자진사퇴 △임금교섭단체 구성권 사측에 위임 등을 약속했다. 이로써 이랜드노조 조합원 186명은 17일부터 해고 되기 전 일자리로 복직했다.

이랜드노조 이경옥 부위원장은 “힘든 농성과 투쟁을 하면서 6백여명이던 조합원도 점점 줄어 180여명이 됐다”며 “이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할 수 없어 협상을 끝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타결을 위해 우리가 집필한 책까지 읽으며 협상에 임한 홈플러스 측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홈플러스 측은 “우리가 내건 약속을 최대한 빨리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랜드 사태’는 지난해 6월 17일 이랜드 측이 홈에버, 뉴코아 소속 계약직 노동자 1천여명을 계약해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년간 협상 없이 농성과 공권력 투입에 의한 강제해산이 반복돼왔다.

노동계와 재계는 1년 반 가까이 지속된 이랜드 사태가 협상으로 타결된 것을 환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은 “노사 모두 더 이상의 피해 없이 합의를 본 것에 만족한다”며 “어렵게 타결된 만큼 서로가 내건 약속이 모두 이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 이상철 팀장도 “이번 협상은 노사 양측 모두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노사  갈등이 협상을 통해 해결된 선례”라고 말했다.

◇타결은 됐지만…잃어버린 것들 너무 많아=파업이 오래간 만큼 노사 양측이 입은 상처도 컸다. 이랜드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악용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인식돼 소비자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결국 홈에버는 지난 1년간 2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홈플러스에 매각됐다. 이랜드노조 조합원들은 파업 과정에서 허리디스크 등의 질병을 앓았고, 파업을 포기한 400여명의 조합원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협상과정에서 12명의 지도부가 일터로 복귀하지 못한 것도 옥의 티다. 이랜드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많은 조합원의 일자리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홈플러스 측의 ‘지도부 사퇴 및 노조해산’ 요구를 받아들였다”며 “다만 노동자의 기본권리인 ‘노조설립’을 포기하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파업기간 동안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이랜드노조의 신뢰를 잃었다. 이랜드노조원 김정애씨(51세)는 “민주노총은 지원 의지를 표명했지만 산별노조 단위로 따로 활동하는 등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박선임씨(47세)는 “농성기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대학 학생회, 시민단체, 해외 노동단체 등이 우리에게 지원금을 기부했는데 지원금을 받은 서비스연맹은 이를 우리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투쟁,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번 협상 타결로 대표적인 비정규직 문제였던 이랜드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기륭전자, KTX여승무원, 코스콤 등의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 이해삼 본부장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요구는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과의 차별을 없애 달라는 것”이라며 “기륭전자와 코스콤 등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정부의 수수방관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진보신당 최은희 대외협력부장은 “이번 이랜드노조 합의과정에서 정부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노동자와 고용자의 갈등에 정부가 강제적으로라도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반대의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비정규본부 박수경 차장은 “현행법 상 사측이 져야할 의무는 ‘계약기간 2년’뿐”이라며 “정부는 계약기간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임금, 노조가입 등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김희순 간사는 “내년 7월까지 개정안이 나오지 않으면 100만명의 비정규직노동자가 실직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정부가 계약기간을 늘리고, 계약직종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은 일시적 대안에 불과하다”며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했을 때 정부가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