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지난 10월은 노벨상으로 들썩였다. 일본이 노벨 과학상을 독식하는 기쁨에 들썩였다면 우리는 부러움과 함께 대응책을 모색하느라 들썩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13번의 수상은 이공계 분야에서 나왔다. 올해에만 물리학상 3명과 화학상 1명이 나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온 나라가 잠시 동안 경사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느냐며 원인 분석과 대응책을 모색하기에 바빴다.

많은 의견들이 나왔고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기초교육 부재,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 이공계 기피현상, 재정지원 부족, 성과주의에 입각한 지원 등. 이 모든 것들이 얽힌 복잡한 문제이나 나의 좁은 시각으로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기다릴 줄 모르는 우리의 조급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도 너무 급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격동의 시간을 보 내왔지만 아직 따라잡을 것이 많은 우리는 노벨상 타기에도 급한 것 같다. 급해서 기초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산업 발전은 급하게 이룰 수 있었지만 기초과학은 기반이 무르익지 않으면 훌륭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없다.

노벨상은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거나,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또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이런 업적은 단기간에 뚝딱 나오지 않는다.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의 주제인 인간 유두종바이러스(HPV)와 인간 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발견은 약 25년 전의 업적이 지금에야 평가받게 됐고, 화학상 수상의 주제인 녹색형광단백질(GFP)은 발견된 지 무려 46년이 지난 후에야 평가받았다. 현재의 발견이 인류의 발전과 복지에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십 수 년에서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연구 환경이 과거에 비하여 월등히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 비하여도 몇 십 년 늦게 시작한 우리의 현대 과학 역사를 볼 때 수상자가 없다고 조급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도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기다림의 자세를 가져야할 때다. 개교 62주년 행사에서 이장무 총장은 “서울대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지만, 단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닌 기초과학 연구 지원의 기반을 닦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가 재정을 축소할 때 우리는 과감히 투자하고 10∼20년 기다려 보면 그 차이가 보이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현재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우리나라의 교수님들과 박사님들이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매번 얄밉지만 이런 측면에서는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의 경제 불황 속에서도 일본은 기초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의 조급증은 또 하나의 황우석 박사를 낳을 뿐이다. 당장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식의 기대감이 조작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실험대에 앉아 실험이 잘 안 될 때면 나도 조급해 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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