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박현욱

 

사진: 김지민 기자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전부다. 나는 그녀의 전 남편이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최근 개봉해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두 명의 남편을 원하는 여성 때문에 벌어지는 부부 세 명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영화는 결혼생활에서 주도권을 갖고자하는 여성의 환상과 ‘비독점적다자연애(폴리아모리)’라는 자유주의적 사상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에 힘입어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이렇게 인기를 끈 데에는 원작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탄탄한 구성이 크게 기여했다.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40만부 이상 팔리며 넓은 독자층을 형성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원작자로서 변용된 부분이 많아 마음이 아팠지만 두 번째 볼 때는 거리두기가 가능해져서 재밌게 봤어요”라고 말하는 원작 소설가 박현욱을 만났다.

1991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에 취직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소설가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 흔한 글짓기 백일장 수상 경력 하나 없을 정도로 글을 써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소설가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글 쓰다 보니 어쩌다…….’ 박현욱은 “회사를 나와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하던 중 이를 글로 써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쓰게 된 글은 길어지는 백수생활과 함께 다듬어졌고 한편의 소설이 됐다. 박현욱은 ‘마침’ 모집하던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에 이 글을 응모했고 소설 『동정없는 세상』은 “십대 소년의 이야기를 인간 성장의 넓은 맥락에서 다양하게 읽히게 만든다”는 문학평론가 황종연 교수(동국대·국어국문학과)의 평가와 함께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박현욱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관계 맺기’다. 그는 “우리의 소소한 삶과 사람들이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지만 종종 놓치기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첫 소설집 『그 여자의 침대』에서도 이러한 그의 관심은 그대로 이어진다.
“내가 ‘현실과 과학’ 따위의 사회과학 무크지들을 읽을 때 그녀는 문예계간지들을 읽었다. 우리가 같이 읽은 책이라면 두세 권의 『창작과 비평』 정 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창작과 비평』에 실린 사회과학 논문들만 읽었고, 아내는 그 논문들만 빼놓고 읽었다.”(「연체」에서)

박현욱은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남녀관계의 균열’에 주목한다. 「연체」에서는 집나간 아내를 추억하는 ‘나’가 등장한다. 아내가 빌렸던 도서가 연체됐다는 연락을 받은 주인공은 ‘독서법’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달랐던 부부관계를 회상하며 이혼 심사 중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내쉰다. 표제작 「그 여자의 침대」도 이혼 후 더블 침대에 극도의 거부감을 느끼는 여자가 ‘침대의 크기’ 때문에 남자친구와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남녀관계를 주로 그리는 이유는 단지 “남녀관계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현욱은 “결혼 제도나 남녀 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라고 덧붙인다.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그렇지만 작가는 작품 속에서 갈등이 해결되는 ‘꿈’을 온전히 이뤄주지는 않는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경우 소설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좀 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했어요. 주인공들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거나 근본적인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요. 단지 조그만 틈새를 찾았고 그것이 함께 떠나는 것이죠”라고 설명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주인공 덕훈은 아내와 함께 뉴질랜드로 떠날 결심을 하지만 또 다른 남편인 재경과의 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다. 「그 여자의 침대」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결국 더블 침대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싱글 침대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며 잠을 청한다.

“아직도 작가라는 이름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등단한 지 8년이 넘었고 세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단편집을 발간했지만 그는 여전히 “소설 쓰는 것이 힘들어요”라고 고백한다. 그는 “현실에서 맺는 관계는 말도 안되는 우연이 작용할 수 있지만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필연적인 구조가 필요해요. 다양한 변용을 통해 소설을 구성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소설을 쓰는 이유는 뭘까? 박현욱은 “아직 나조차도 내가 왜 소설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지 좀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털어놓는다.

박현욱은 현재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쓰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사람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그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내면을 보여줄 뿐이다. 현실에 직면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결국 현실에 사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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