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황혼

레지널드 존스턴 지음┃김성배 옮김┃돌베개┃740쪽┃2만5천원

때로는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원작에 흥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책의 제목을 보고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떠올린 독자라면 남다른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마지막 황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지난 5일(수) 중국 만주 왕조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를 다룬 『자금성의 황혼』이 국내 최초로 번역·출간됐다. 「마지막 황제」에서 선통제(푸이)의 개인교습을 맡았던 백발의 신사가 바로 책의 저자 레지널드 존스턴이다.

책은 광서제가 중국을 개혁하기 위해 백일유신을 추진하던 1898년부터 시작한다. 이후 개혁에 실패한 광서제가 유폐되고 선통제가 즉위한 1908년을 거쳐, 자금성에서 쫓겨난 선통제가 텐진의 일본인 거주지에서 생활하던 1931년까지, 34년간의 중국 근대사를 다룬다. 저자가 ‘자금성의 황혼기’라고 부른 1912년부터 1924년까지는 7장부터 23장에 담겨있다. 1912년 중화민국을 수립한 혁명파와 만주 황실의 타협으로 푸이는 황제 칭호를 제외한 모든 정치권력을 박탈당한다. 이후 그는 퇴위한 황제로서 자금성에 거주하다 1924년 풍옥상에 의해 자금성에서 추방된다.

책은 저자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당시 사건을 생동감 있게 만나볼 수 있다. 저자의 생생한 목소리는 인물평에서 잘 나타난다. 1920년대 중국은 내전을 겪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1924년에 일어난 양자강 군벌들 사이의 전쟁이 있었다. 그중 오패부는 자금성이 위치한 베이징 등 중국 북부를 지휘하던 군벌이었다. 저자는 오패부에 대해 “그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 몇 번이나 부하들에게 속임을 당했고, 이것이 그가 파멸한 원인이었다”는 자신의 평가와 함께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중국 북부의 어떤 걸출한 인물보다도 한동안 인기가 있었던 영웅”이라는 당대의 평가도 함께 싣는다. 오패부를 배신해 중국 북부를 장악하고, 푸이를 쫓아낸 풍옥상에 대해서는 “묵은 원한을 품고 있으며 그 충성심과 군인 정신이 이미 수상쩍던 인물”이라며 악의에 찬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까지 한다.

1934년 출간 당시 유럽 독자들이 영국인 ‘중국통’의 특이한 경험담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반면, 현재 이 책은 당시 중국사회에 대한 현장성이 깃든 사료로 주목받고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실려 있어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중국과 일본에서 활발히 번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예민했던 중일 관계를 다루고 있는 중국 근대사의 1차 사료이기 때문이다. “책은 만청민국사에 관한 저작 가운데 고전이자 문제작”이라는 옮긴이의 말은 이 책의 위상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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