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탄생

이영아 지음┃민음사┃356쪽┃1만8천원 

한시도 미용에 관심을 끊지 못하는 한 대학원생은 어느날 ‘육체로부터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왜 난 내 몸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답을 얻기 위해 ‘어디서’ 강박이 오는 것인가를 먼저 추적한다.

최근 출간된 『육체의 탄생』의 저자 이영아씨는 그 답을 ‘근대’에서 찾는다. 근대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내 몸이 나의 것임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나만의 육체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 근대화 이후에 우리 몸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고 설명한다. 현대사회에서 육체는 조작과 통제가 능숙할수록 더 많은 자본과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개화기를 맞이하면서 “‘몸’은 더 이상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머물기를 거부했다”고 말한다. 유교에서 ‘대를 잇는 매개체’에 불과했던 몸이 단번에 개인의 소유물이 된 것은 아니다. 책은 단발령 논쟁을 소개하면서 개화기 조선 때 근대적인 ‘육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유학자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부르짖으며 상투를 자를 수 없다고 극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밀려 좌절을 맛보게 된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발하는 사람이 급증했고 이발소는 개화와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몸’의 개인화는 외부억압으로부터 육체의 해방을 의미하는가. 오히려 저자는 “전통적 인식과의 결별을 통해 내 몸은 (부모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 됐다고 믿은 순간,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권력의 것이 됐다”고 말한다. 국가는 국익을 위해 ‘생체정치’를 내세우며 개인의 몸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위생을 위해 운동을 통한 몸의 단련이 권장됐고, 청소년의 성교육도 국가의 관리 하에서 이뤄졌다. 유교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몸에 대한 ‘위생’과 ‘교육’이라는 두 담론이 새로운 규율로 들어선 것이다.

확고해보이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자리는 어느새 ‘권미징추(勸美懲醜)’에게 넘어간 듯하다. ‘더 근대적인 몸’을 향한 경주는 우리가 끊임없이 더 멋진 몸으로 재탄생할 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강박의 경주’는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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