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외면, 편집권 문제로
위기에 처한 학보사들
대학언론만의 가치 위해
비판정신 잃지 말아야

학보사 편집장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옵니다. 주로 기사와 관련해 본부 직원이나 취재원들에게 연락을 받는데, 가끔은 독자퀴즈 답안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항의를 받기도 하고, 1980년대 『대학신문』은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식의 문의도 종종 들어옵니다. 또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때에는 취재원의 입장이 돼 외부언론을 대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이 깊다고 할까요,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다른 학교 학보사로부터 연락을 받는 것입니다. 학보사 창간 몇 주년을 기념해 축사나 신문 평가 등을 부탁받곤 합니다. 학보사의 어제와 미래를 주제로 한 좌담회에 초청하거나 취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여러 학보사 기자들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런 기회들로 평기자 시절에는 실감하지 못하는, 흔히들 말하는 ‘학보사의 위기’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보사는 학교와 역사를 같이하며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학보사들이 하나둘씩 발행부수, 발행횟수, 면수 등을 축소해 나가고 있고, 심지어는 폐간되거나 본부의 기관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원인은 독자층인 학생들이 학보에서 정보를 얻는 시기가 지났다는 점입니다. 이는 대학축제의 변화상과도 비슷한 면을 보입니다. 과거 학생운동과 투쟁의 일환이었던 대학축제가 학생운동의 쇠퇴와 대중문화의 발달로 외면받기 시작한 것처럼 학보 역시 학생운동의 산실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함에 따라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학보사 내의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이 학보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10명 남짓한 기자들이 격주로 겨우겨우 신문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주간 교수의 지나친 간섭으로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주간 교수와의 마찰로 학보사를 나왔습니다.

지난달 경희대 학보 「대학주보」는 학보사들의 편집권 침해 사례를 보도했습니다. 많은 사례가 수집된 것은 아니지만 편집권 갈등으로 인해 무제호 신문이 발행되거나, 기자단 전체가 사임하는 등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같지만 이것이 많은 학보사들의 현실입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리란 언뜻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대의 흐름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학보사는 학보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소명이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바로 ‘학교의 신문’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신문사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입니다. 비교적 많은 학생 기자 수를 유지하며 매주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학교를 향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한 학보사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학보사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학내 사안을 다룰 때 가장 잘 드러나게 됩니다. 때문에 학교와 너무 멀어지면 정체성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학보사 역시 신문이며 언론입니다. 언제나 비판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며 민주, 정의 등 대학언론이 지향해야할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학교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대학신문』을 수식하는 말은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입니다.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대학신문사뿐만 아니라 모든 학보사들이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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