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조의 ‘슈퍼맨’과 눈뜨고 코베인의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라는 노래는 정반대의 충고를 하고 있다. 전자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어야 함을, 후자는 지구를 지키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 중 어느 메시지에 공감할까?

진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리더가 되어라’는 것이다. 국내외 저명인사를 초청하는 강연에는 ‘글로벌 리더’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 서점에는 좋은 지도자의 자질을 다룬 책들이 쌓여 있다. 지도자를 유형별로 분석한 책,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더를 다룬 책, 심지어 『첫아기 리더로 키우기 0~3세』라는 교육서적도 있다.

우리 사회는 리더를 동경한다. 특히 글로벌 리더는 21세기에 꼭 필요한 인재로 그려진다. 여기서 ‘글로벌’이라는 말과 함께 있을 때 어울리는 '리더'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현실에서 리더는 ‘집단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보다 좁은 개념으로 쓰이는 것 같다. 리더는 명예, 포부, 지성, 주류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리더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리더는 적어도 ‘야망과 꿈이 있고’  ‘포부가 큰’ 사람이라면 바라봐야 할 위치로 인식된다. ‘나중에 커서 리더가 되어라’는 말은 무의식중에 CEO, 외교관, 대통령, UN 사무총장 등 ‘폼나고’ ‘거창한’ 직업들과 연결된다. 즉, 리더는 입신양명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리더가 이러한 사회적 의미를 가질 때, 리더를 강조하는 것은 거대하고 세계적인 꿈만이 이상적이고 젊은이다운 것이라는 인식을 낳게 된다. 저마다 다른 꿈의 ‘크기’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만큼 리더를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꼭 리더가 돼야 하는 것처럼 만드는 현실 또한 모순이다. 자꾸만 크고 거대한 것을 추구하는 분위기는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게 만든다. 이는 리더를 지향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한편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국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인격과 경력을 이상적인 잣대에 맞추려고 힘쓰겠지만 정작 사소하고 철학적인 문제들은 소홀히 하기 쉽다. 한편 리더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리더라는 말에 부여되는 지성과 지위, 명예를 가지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담론은 파시즘에 가깝다. 넘쳐나는 글로벌과 리더의 담론 속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교과서 속 어구는 '그래도 리더가 되는 편이 낫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눈뜨고 코베인의 노래처럼, ‘지구를 지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것인가? 리더가 되라는 것만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인가? 우리 사회는 정말 이러한 메시지에 공감하는가? 

박연 정치학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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