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법인화 논의
중요한 것은 절차와 내용
자율적 운영체제 보장하는
새 입법 요구해야

인문대 서양사학과
이장무 총장은 올해의 신년사에서 법인화 추진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적인 정책 수립과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국립대학이라는 현재의 구조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법인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연말 평의원회 산하 ‘법인화 대책위원회’는 법인화문제가 “정부와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특히 교수사회에도 법인화에 대한 조용한 입장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2002년에 서울대 법인화를 위헌으로 규정했던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2005년에는 법인화에 대해 선결조건을 제시한 걸 예로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국립대학 법인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 1995년경이니 10년이 넘었다. 우리보다 논의가 늦었던 일본이 법인화를 이룬지 벌써 6년이 됐고, 이 과정에서 일본 문부성이 대학사회의 의견 수렴에서 보인 개방성과 순발력은 교과부와 비교해볼 때 돋보인다. 교과부의 무능과 독선으로 법인화 추진이 속도를 못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지체로 인해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간 우리의 법인화 논의가 풍성해져 단일한 법인화 모델만이 아닌 , 또 법인화 여부가 아닌 법인화의 절차와 내용이 관건이라는 인식에 이르게 됐음도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협의회의 입장 변화는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사실 총장의 법인화 추진 의사는 지금서울대의 여건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대학을 이룩해내기 어렵다는 고민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서울대가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협의가 잘 진행된다 하더라도 대학의 자율성 및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법인화가 과연 가능할 지 의문이다. 먼저 현 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과 대학 자율성 확대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지난 연말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립대학재정회계법’은 정부가 재정지원을 확대하기는커녕 그럴 의지가 전혀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일본의 경험은 법인화로 오히려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의 통제가 더욱 커졌음을 보여준다. 법인화 이후 국가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등교육 정부지원이 OECD 국가(평균 GDP 대비 1.1%) 가운데 우리나라가 최하(0.6%)다. 재원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에서 사립대 비중이 가장 높다. 국립대의 존재가 절실한 이유다. 서울대는 국립대체계의 발전을 선도해야 하며, 거점 국립대들과 힘을 합쳐 정부에 새 입법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확대시켜 독자적인 입법화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기성회계를 폐지하되 이를 정부가 보전하고, 일반회계와 통합한 후 국고지원은 총액으로 출연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이후 총장선출, 재정운영, 인사 및 조직 문제는 대학 구성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운영 체제를 보장하면 된다. 대학 운영에 대한 평가 역시 대학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를 별도 구성해 대학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정책 개입은 이들 방안를 도입한 이후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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