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아 놀라지 말고 들어. 도건이가 죽었다.”

“…”

“영빈아? 영빈아? 듣고 있어? 영빈아?”

나는 독도라이더라는 이름으로 분에 넘치는 인정을 받아왔다. 세계를 돌며 독도를 알린다는 의미 있는 활동을 후배들이 이어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독도레이서를 함께 준비하였다. 도건이를 비롯한 7명의 독도레이서는 지난달 22일 다케시마 날에 항의하는 의미로, 함께 달린 500명의 발도장을 들고 서울부터 독도까지 달려갔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릴레이 마라톤이 계속되는 23일 밤 11시 30분, 후방에서 보호하던 차량이 운전자 교대를 위해서 잠시 빠진 2분 뒤의 일이었다. 만취한 환갑의 노인이 운전하던 트럭이 도건이를 쳤다.

도건이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동아리 설명회에 남들보다 하루나 일찍 와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일찍 왔으니 꼭 뽑아주세요”라고 밝게 웃는데 앞니 두 개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부러진 것이라며 한 번 더 해맑게 웃었다. 도건이는 세상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동아리에 큰 인물 하나 들어왔다고 나와 태준이는 몹시 좋아했었다.

좋은 형, 누나들을 만나 함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전화를 걸 때마다 자랑했다는 도건이 부모님의 말씀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죄송합니다”란 말 뿐이었다. 성환이는 자신이 뛸 차례인데 힘들어하는 걸 보고 도건이가 하겠다고 나선 거라며 도건이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도건이 어머님께서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독도 레이서 팀원들을 오히려 위로하시며 “여러분들에게 너무나도 큰 책임을 지운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도건이, 길에서 차에 치어 개죽음 당했다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독도에 대한 도건이 뜻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 도건이 국가유공자라도 되야 하지 않컸나?”

유가족 분들께서는 한분씩 돌아가며 하나같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 손을 부여잡고는 말씀하셨다. 나였으면 주저앉아 자신을 갉아먹고 있을 텐데, 남은 6명의 독도레이서들은 도건이의 뜻을 이어서 끝까지 남은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독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도 문제는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닌 진실과 거짓의 문제이며 극우 제국주의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문제이다. 일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 진실을 잘 알려주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라고 말할 때에 도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죄책감에 제대로 눈을 붙이고 잠을 자지 못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긴장이 풀려 잠이 쏟아져 왔다. 아주 달콤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도건이가 나에게 계속 장난을 치며 나를 놀렸다. 꿈에서 깨고 나는 한참동안 가슴을 부여잡고 쇳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가 저지른 죄를 다들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도건이를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영빈

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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