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윗것’들이 정신적 향락을 추구하는 동안 ‘아랫것’들은 일상에서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신분이라는 위계적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정신과 육체는 더 이상 별개의 영역에 속하지 않게 됐다. 윗것, 아랫것 모두가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몸, 일상을 말하다’를 주제로 건국대 몸문화 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가 지난 27일(목)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해체시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정치성을 비판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우리의 일상은 미용산업, 헬스산업 등 자본의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 조작되면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작된 일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비대해진 정신의 영역에서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석 강사(건국대 철학과)는 ‘육화된 코기토와 새로운 주체화’라는 발표에서 “신체는 코기토의 가능 조건이자 세계에 대한 실질적 매개자”라고 역설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철학의 제일 명제로 삼았다. 이후 코기토는 ‘사유하는 나’를 모든 인식과 실천의 근본전제로 놓음으로써 합리주의 전통을 서양사상사에 남겼다. 하지만 김 강사는 “인간에게 몸이 없다면 세계 속에서 인간 의지와 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내재한 사유와 존재의 관계를 파고들어야만 육체의 실재성에 기초한 새로운 주체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언급한 새로운 주체화는 육화된 코기토라는 개념을 통해 몸의 존재론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일컫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몸에 대한 올바른 인식론적 태도를 정립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몸과 관련된 일상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석 강사의 발표가 정신에 함몰된 육체의 제 위치를 찾아줬다면 김종갑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의 발표는 육체에 함몰된 정신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예이츠의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김 교수는 ‘실재로서 노년의 몸: 예이츠를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인다. 그는 예이츠의 노년에 나타난 성적 갈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의 노년은 남근의 상실기가 아닌 비남근적 보상의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남근적으로 상징화됐던 몸을 탈상징화하는 과정을 통해 예이츠는 존재론적 균열을 봉합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이츠에게 남근은 거칠고 공격적인 존재로서 자신이 사랑하던 여성을 상처받게 할 수도 있기에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노년이 돼서야 예이츠는 상상 속에서 그토록 두려워했던 ‘야수적 젊음’이 애초에 없었음을 깨닫게 됐다. 육체와 정신이 합일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시기가 돼서야 “모든 성(聖)과 속(俗)은 아름다우며, 모든 성(聖)적인 것은 성(性)적인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성은 영원하지 않다. 그것이 유효한 시기는 육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그 짧은 순간일 뿐이다. 우리는 결국 육체라는 땅을 딛고 이성이라는 별을 관찰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온 문구를 인용하며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고 말했다. 일상은 우리의 정체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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