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이탈리아 격언도 있지만 번역이 새로운 문화를 창달하는 첩경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아랍어로 번역된 방대한 그리스 문헌들이 르네상스 때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지 못했다면 유럽은 그토록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번역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번역가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고 번역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다. 각각 번역 그 자체와 번역계에 초점을 맞춘, 번역의 ‘안과 겉’에 관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베스트셀러 30위 내 도서 중 절반을 번역서가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번역 관련 비평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와중에 최근 번역의 ‘겉’인 번역계에 대한 비평을 모은 『번역출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의 출간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내 ‘부록잡지’로 지난 2008년 초에 처음 발간된 「번역출판」 네 권 분량을 엮어 만들어졌다. 한국출판연구소의 백원근 연구원 등 총 20여명의 필자가 그들이 직접 경험한 번역계의 현실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내고 좋은 번역을 위한 조언까지 곁들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신간 도서 3권 중 1권은 번역서일 정도로 번역서는 한국출판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2007년 국내 도서 총 발행종수는 53,235종인데 그 중 23.2%를 이루는 12,321종이 번역서다. 이는 ‘번역왕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8%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수치다. 하지만 수많은 번역서가 난립하는 출판계 상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백원근 연구원은 “흔하디흔한 재료를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것은 중국 농산물로 인해 국내 농업 기반이 초토화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번역출판을 하는 데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럼 번역가는 어떤 철학을 갖고 번역에 임해야 할까.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은 20여년간 전문번역가로 활동한 이희재씨가 쓴 번역의 ‘안’과 관련된 번역참고서다. 그는 원어와 한국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저자는 ‘낮은 포복’인 직역을 싫어한다.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더 중점을 두는 ‘고공 비행’ 또한 싫어한다. 그는 “차라리 아슬아슬한 ‘저공 비행’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저공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짝짓기, 좁히기, 뒤집기 등의 비행술이 필요하다. 저공 비행술을 배우려면 우선 짝짓기 과정부터 이수해야 한다.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다. 부적절한 대응어를 가려내는 능력부터 배양해야 한다. 그 뒤에 좁히기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는 대상을 묘사할 때 간략하게 명사를 사용하는 한국어에 비해 서술적으로 묘사하길 즐기는 영어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면 뒤집기 과정을 이수할 자격이 생긴다. 뒤집기는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생기는 어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s가 문장 맨 앞에 있다고 해서 굳이 as를 먼저 번역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격언은 엄밀하게 따져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원문과 번역서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리는 번역계의 노력으로 충분히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번역비평을 통해 한국 번역계가 한층 더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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