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자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순교자 예수는 생각할 수 있어도 사회주의자 예수를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마침 예수와 성경을 ‘혁명’이라는 주제로 조망하는 두 저서가 최근 번역·출간됐다.

『예수:가스펠』(프레시안북, 2009)의 편저자인 테리 이글턴 교수(영국 맨체스터대 영어영문학과)는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로 분류되곤 한다. 그는 주로 19~20세기 영미문학을 연구해 그 속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적 배후를 폭로하는 일에 주력했다. 최근 그는 관심을 문화연구 쪽으로 옮겼고 이 책은 그 결과물에 해당된다. 이글턴 교수가 “예수는 혁명가였나?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인정했을 만한 혁명가는 아니었다”고 말할 때, 이는 예수가 레닌과 트로츠키와 달리 권력 구조의 전복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것이 이글턴의 결론은 아니다.

저자는 예수가 “더 완벽한 존재 양상에 의해 기존 권력구조가 일소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에 좀 다른, 어쩌면 더 근본적인 혁명가일 수 있다는 결론을 암시한다. 저자는 기독교가 세속의 인본주의보다 훨씬 더 비관적일 뿐 아니라 훨씬 더 낙관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전자를 상징하는 것이 ‘원죄’이고, 후자를 상징하는 것이 ‘부활’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 단호하게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 입증된 천국이 인간 존재의 혁명적 변모를 통해 지상에 실현될 수 있다고 단호하게 확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급진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테리 이글턴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을 분석하면서 혁명 정신을 찾아나섰다면, 에른스트 블로흐는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열린책들, 2009)에서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재구성한다. 그는 “모든 권력과 금력에 저항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라고 역설한다. 길희성 교수(서강대 종교학과)는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에서 “현재 한국사회에 넓고 깊게 뿌리내린 기독교는 단순 종교를 넘어선 하나의 정치권력으로서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고, 신자들 또한 무비판적으로 순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길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한국 기독교 신자들은 ‘가짜’ 기독교 정신을 좇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기독교는 단 한번이라도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따뜻함으로 대해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보수·권력화된 기독교는 그들에게 순종과 인내의 미덕을 강요했을 뿐이다. 과거부터 계속돼온 기독교의 왜곡된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교묘한 이데올로기’로 뿌리 내려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가 비판하는 핵심 내용이다. 그 대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역설적이게도 종교의 진정한 본질은 “종교를 비판하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답한다. 역사적으로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한 분석은 종교 비판을 통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소외된 객체에서 인간다운 주체로 되돌려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