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어느 누가 이 보편적 법칙을 거스를 수 있을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문학동네, 2009)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법칙을 깨트리는 상상을 한다. 벤자민의 생체 시간은 남들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것이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의 인생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더 이상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신혼 시절 벤자민은 그녀를 숭배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그녀의 금빛 머리칼은 매력 없는 갈색으로 변했고 파란 물감 같던 눈은 싸구려 도자기 같은 색을 띠었다. 그는 사랑하는 이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었지만 같이 늙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벤자민은 시간을 다시 거꾸로 돌려 아내를 사랑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거꾸로 가는 시계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은 사회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유치원으로 점점 자신의 위치를 옮겨 간다. 끝내 그는 요람 속에 잠들게 되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꿈같던 신혼시절, 멋진 대학시절의 기억은 찾아오지 않는다. 벤자민은 무덤이 아닌 요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을 거스르고자 했던 한 사나이의 인생은 불행하게 끝을 맺는다.

시간에 도전장을 내민 자가 또 있다. 『바시르와 왈츠를』(다른, 2009)의 저자 아리 폴먼은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시간을 거스른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밝혀진 진실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폭격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참에 자신의 꼭두각시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지명한다. 바시르 제마엘은 대통령 취임을 9일 앞둔 그해 9월 14일 폭탄 테러로 살해된다.

그날 오후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9월 16일 이스라엘 군이 쏘는 조명탄의 호위 속에서 바시르의 추종자들이었던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으로 들어갔다. 민병대의 목적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색출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들은 이미 튀니지로 피신했고 난민촌에 남아 있던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가 희생됐다.
아리 폴만도 이스라엘 병사로 레바논 내전에 참전했었다. 사람에게는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어두운 면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 기제가 있다. 아리 폴먼은 자신이 함께 했던 전우들을 인터뷰하면서 차츰 그 방어 기제를 부순다. 그리곤 ‘그때 그 시간’을 끝내 기억해낸다. 결국 불편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의 치열한 여정은 난민촌에서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종지부를 찍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바시르와 왈츠를』은 각각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하면서 영화로도 인정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영화의 감동이 종이로 스며든 두 작품을 읽는다면 시간과 기억 그리고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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