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단순하고 보편적이다. 더 잘 적응한 존재가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진화 이론 분야에도 적용 가능하다.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총론에 동의하는 생물학자들도 세부이론에서는 주도권 경쟁을 벌여왔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150년간 이어져온 이론의 ‘적자생존’ 경쟁에서 ‘자연선택’된 진화 이론은 무엇일까.

다윈이 자연선택설을 내놓을 당시 유력한 진화 이론은 ‘용불용설’로 불리는 라마르크주의였다. 용불용설은 기린이 높이 있는 나뭇잎을 따먹으려는 노력으로 목이 길어지게 되고, 이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돼 더 목이 길어지도록 진화한다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가정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자 라마르크주의와 자연선택설은 경쟁관계에 놓였고 수십년간 각각의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제시되며 팽팽한 논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DNA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유전학자들이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은 유전자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중심원리를 입증하면서 라마르크주의는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이보디보의 등장으로 최근 들어 재조명되고 있는 ‘반복설’도 20세기 초에는 유전학에 의해 낙오된 이론 중 하나였다. 독일 생물학자인 헤켈은 1866년 “수정란이 완전한 성체가 되는 개체발생 과정은 그 종이 진화해온 계통발생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반복설을 주장했다. 이 이론은 포유류의 수정란이 성체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형태가 나타난다는 관찰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반복설을 입증하기에는 발생학은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유전학은 수십년간 쌓아온 눈부신 성과들을 진화론에 적용해 ‘현대적 종합’이라 불리는 진화 이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반복설이 발표된 이후 발생학이 진화론의 중심무대로 돌아오는 데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진화 이론의 경쟁에 정치, 사회학적 요소가 개입하기도 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20세기 중엽 소련에서 새롭게 주목 받은 라마르크주의다. 쇠락해가던 라마르크주의는 ‘사회주의의 영웅’ 리센코의 등장과 함께 사회주의 세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우연한 결과로 생물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은 리센코는 “사회 향상을 위한 개인적 노력과 고통이 보상받는다”는 사회주의 이념과 상통하는 라마르크주의를 추종했다. 엄밀한 사실에만 입각해야 하는 과학이 정치와 결탁한 결과 획득형질의 유전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 결과는 왜곡돼야 했다. 스탈린의 지지를 등에 업은 리센코가 생물학계를 통치한 25년 동안 정직한 과학자들은 숙청됐다. 세계적인 유전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도 옥사했다. 왜곡된 이론이 현실 농업에 반영된 결과 소련과 중국은 급격한 생산량 감소를 겪어야 했다.

최근까지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논쟁으로는 굴드와 도킨스의 ‘적응주의’ 논쟁이 있다. 적응주의는 자연선택만이 진화의 유일무이한 결정적인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굴드는 도킨스를 비롯한 적응주의자들이 진화의 부산물까지 자연선택의 결과인 ‘적응’이라고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과 빵글로스적인 패러다임」에서 마치 『깡디드』에 나오는 빵글로스가 “코는 안경을 받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입증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적응 형질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적응주의자들은 “일부 사례가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여전히 생명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자연선택 이외의 방법으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다만 적응주의자들은 적응주의가 끼워맞추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수용해 적응과 부산물을 구분하는 세련된 기준과 절차를 개발하고 있다. 적응주의 논쟁은 지난 2002년 굴드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격렬하게 진행됐으며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론이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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