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처녀’라는 명사는 결혼하지 않은 성년 여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확장해 어떤 일이나 행동을 처음으로 한다는 의미를 덧붙이기 위해 다른 명사와 결합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 ‘처녀’는 단순히 어떤 일이 처음임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지만 공식적인 자리 또는 신문기사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어떤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의미를 덧붙이기 위해 ‘처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이 때의 ‘처녀’는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기보다 ‘한 번도 성관계를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실제로 사전에도 이 두 경우를 구분해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짙게 배어 있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또는 ‘정복되지 않은’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을 일컬어 ‘처녀림’이라고 하거나 개척된 적이 없는 미지의 땅을 ‘처녀지’라고 하는 언어 사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로부터 순결이라는 개념은 유독 여성에게만 강조돼 왔다. 여성은 언제나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소위 ‘손대지 않은’ 상태여야 했고 남성은 그런 순결한 여성(처녀)을 처음으로 ‘정복’한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아직도 처녀막 재생 수술 같은 시술이 존재하는 것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일부 부족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여성 할례, 또는 여성 음핵 절제 시술(FGMC)은 여성에게 순결을 지고한 가치로 강요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처녀’라는 명사를 앞에 덧붙여 처음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반영된 용어이므로 순화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처녀림’은 ‘원시림’, ‘처녀지’는 ‘미개척지’로 순화할 수 있다. ‘처녀비행’, ‘처녀작’ 등의 단어에서 ‘처녀’를 ‘첫’ 또는 ‘처음’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그 의미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한국여성개발원에서는 처녀작 등을 포함하여 성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용어의 순화 또는 사용 자제를 권고한 바 있다.

언어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해당 언어권의 사회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언어를 통해 사회를 볼 수 있으며 언어가 사람들의 의식체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처녀’라는 명사가 ‘처음’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현상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순화하려는 노력은 이런 시각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영
 경제학부·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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