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자동차 강국. 2007년도 아르헨티나 일반지리 교과서에 서술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심지어 2008년도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1640년대 한국은 중국 청 왕조의 속국”이라는 내용도 실려 있다. ‘어떤 것을 바로 알린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과 잘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해외 교과서의 경우 전자보다 후자로 인한 왜곡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분쟁화, 중국의 동북공정 등 각 나라의 사관이 개입된 사안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지만 아르헨티나나 미국 등의 사례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줘야 할 문제다. 후자는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한국사 왜곡은 미필적 고의?=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한국을 올바르게 서술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송기호 교수(국사학과)는 “역사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과서를 통해 이뤄진다”며 “왜곡된 역사교육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면 국가 간, 국민 간 교류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전통이 없는 나라로 인식될 경우 외국인들은 한국을 평가절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사가 해외 교과서에서 왜곡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용태 교수(역사교육과)는 “한국사 관련 자료들이 모두 한국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 학자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기효 교수도 외국에 한국학 전공자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시아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일본이나 중국 전공자”라며 “이들이 한국사 교과서를 쓸 때 참고하는 자료들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사가 왜곡됐다”고 말했다.

해외 교과서에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중국의 시각, ‘한국의 근대화를 일본이 앞당겼다’는 일본의 시각 등 왜곡된 사관이 나타나는 것은 해외학자들이 의도치는 않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자료를 참고해 교과서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여전히 2% 부족=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006년부터 한국학 중핵대학을 선정해 세계에 한국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작년에 선정된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은 대학 내 구조조정으로 한국학과가 축소될 위기에 몰렸으나 이번 연구비 지원으로 구조조정 대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해외에 한국을 알리기 위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서중석 소장(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한호아시아연구소)은 지난해 8월 열린 ‘한국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라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다문화 정책을 시행하는 호주에서는 타문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한국학 연구는 우리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북미 지역에서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지난해 11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북미 소재 25개 대학의 도서관에 한국학 학술 데이터베이스 설치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의회도서관이 독도 검색 주제어를 ‘Tok Island’에서 ‘리앙쿠르 암석’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막은 김하나 사서(캐나다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2월에 통과된 국회 예산안에는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지원이 빠져있다. 경기회복을 위한 예산만으로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도 한국학 지원이 줄어드는 바람에 각 대학 도서관은 한국학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기 어렵게 될 위기에 처했다.

◇‘반크’의 고군분투기=지난달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가 출간됐다. 2003년부터 해외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을 검토해 해당 국가에 수정을 요청해온 이길상 교수(한국학대학원 교육사)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한 것이다. 이 교수는 책에서 “한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민간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교과서 오류 시정을 위해 외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것은 오히려 ‘프로파간다’로 인식돼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고,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나라가 거의 없을 뿐더러 교과서 시장이 자율화돼 있기 때문에 민간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간차원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수준 높은 연구결과물을 이끌어 내고 현지에서 자연스럽게 연구 성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민간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는 대표적 단체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다. 독도지킴이로 유명한 반크는 해외 교과서 오류를 시정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의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해외 교과서 오류를 발견하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해당 국가, 단체에 오류 시정 서한을 보내는 방식이다. 현재 반크에는 1만 6천여 명의 사이버외교관이 있고, 신고건수는 4,495건에 달한다. 하지만 2008년도까지 시정건수는 360건이고 그중 역사 관련 시정은 34건에 그쳤다. 이런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가 몇 군데 없을 뿐더러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민간, 학계가 호흡 맞춰야=학자들은 민간 단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학계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에서 신뢰하고 인용할만한 자료를 현지 언어로 제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사에 정통하면서 한국어까지 능통한 학자는 드물다. 때문에 대내외 전문가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의식 교수(역사교육과)는 “정부차원에서 한국사를 현지 언어로 집필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고 일본문화연구소와 같이 외국인이 한국사를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교과서나 백과사전의 집필자를 한국에 초청해 올바른 한국사를 알려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교과서 속의 한국사 오류를 시정하는 것과 해외 한국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무관하지 않다.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게 되면 그 나라 학자들이 자연스레 교과서의 오류를 찾아내 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하나 사서는 “북미지역 한국학 학자들이 자료를 찾을 때 한국학 데이터베이스는 기초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해외 교과서에 한국을 올바르게 알리기 위해서는 한국사 자료가 수월하게 제공되는 한편 한국학 연구수준도 향상돼야 한다. 유용태 교수는 “한국사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더라도 외국 학자들이 그것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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