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사회적 문제를 상상력으로 떠맡았던 문학이 이제는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문학이 세계의 본질을 꿰뚫기보다 사소한 영역에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문학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 사회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존립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못할 때엔 차라리 문학을 포기하는 것이 더 문학적이라는 역설이 그래서 생겨난다. 가라타니는 그런 인물로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을 꼽는다.

『녹색평론』은 지난 1991년부터 환경, 생태 담론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왔다. 지난달 13일 출간된 『녹색평론선집3』은 김종철 발행인이 『녹색평론』 제27호(1996년 3-4월호)부터 제46호(1999년 5-6월호)까지 게재된 글 중에서 선별해 엮은 것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언론 매체는 경제회복을 외치고 있다. IMF 금융구제를 받던 1998년에도 언론은 경제위기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발행인은 「보살핌의 경제를 위하여」에서 “경제 ‘회복’에 앞서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 경제학자 홀거 하이데는 「노동운동, 자본, 생태계」에서  한국은 식민지, 6.25를 거치면서 ‘공격자’에 대한 숭배 심리가 내면화됐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승리자를 선망하는 반면 약자를 혐오하고 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가 쓴 『한국놈 개새끼』가 한때 인도네시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주장이 지나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IMF를 통해 한국 사회가 폭력적인 산업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여성에게서 답을 찾는다. 산업경제가 이윤추구에 몰입하는 반면 여성의 일은 생명을 보살피고 관계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1950년대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 본관의 대들보가 썩었다. 하지만 이를 보수하기 위해 목재를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었다. 건축가들이 350년 전에 본관을 지으면서 후세대가 목재를 사용할 수 있게끔 작은 숲을 조성해뒀기 때문이다. ‘보살핌의 경제’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다.

이 밖에도 「광우병-산업축산의 폭력성」에서는 광우병 논란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녹색평론선집3』은 십여 년 전 글을 엮은 책이지만 그 현재적 의미는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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