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대졸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정부와 기업은 인턴십을 고용 창출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인턴십이 사용자에게도 근로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취업 희망자는 적성과 전공을 살린 실습 위주의 회사 경험을 통해 진로 방향 설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은 뛰어난 인재를 가까이에서 관찰해 현장성과 실무 능력을 갖춘 준비된 인재를 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턴제도는 잘 운영되면 ‘윈윈’이 될 수 있다. 이에 인턴 경쟁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하반기 인턴십을 진행한 주요 기업 30개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20개사의 평균 경쟁률이 120대 1을 기록했다.

◇인턴십의 기본 취지는 어디로?=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A기업의 인턴 사원이 된 정모씨(23세)는 “인턴 사원을 직원으로 대우하기보다는 견학 온 학생으로 취급해 실질적 프로젝트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진로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K공사 인턴십에 참여한 양모씨(25세)는 “필요한 책을 학교도서관에서 빌려다 달라거나 약국에서 약을 사오라고 하는 등 개인적인 용무를 위한 심부름이 잦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금융업에 관심이 있어 국민은행 인턴으로 지원했다는 윤모씨(25세)는 “청원경찰 옆에서 고객 안내만 했다”며 “금융상품의 판매와 같은 실질적 직장 체험을 기대했는데 문 앞에서 고객 안내를 하는 단순한 일만 했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이어 그는 “100여명의 인턴사원이 각각의 지점으로 발령 받았는데 지점마다 인턴 사원에게 시키는 일이 제각각 달랐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프로그램 없이 인턴의 본래 목적인 직업 교육의 의미를 갖추지 못했다는지적이다. 하지만 금융계는 현금이 오가는 거래 업무를 단기 인턴에게 정식으로 맡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민간 금융회사와 금융 공기업에서 올해 6천여명의 인턴사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력 착취?=영화나 드라마의 트렌디한 여주인공 직업으로 종종 등장하는 미술관 큐레이터의 사정은 어떨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인턴모집 공고는 근무시간을 주 4일 9시간으로 공지하면서도 보수는 없다. 대다수의 미술관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경쟁률은 치열하다. 국공립미술관들에서 발급하는 경력증명을 얻기 위해서다. 이에 월간  「퍼블릭아트」 홍경한 편집장은 “미술관에서 무급의 큐레이터 인턴을 고용하는 것은 교묘하지만 합법”이라며 “무급고용이 노동력 착취라는 비난이 있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어 여태 논의조차 없었던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큐레이터 인턴은 경력이 쌓여도 변변한 기획 한 번 맡기 어렵다”며 “기획은 커녕 차 심부름, 경리, 운전기사 노릇을 비롯한 온갖 잡다한 노무를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잡부라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장이나 대표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그 자리에서 쫓겨날 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기에  불만이 생겨도 발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인턴제, 취업으로 가는 지름길?=지난 5일(목) 한 일간지는 자산 기준 10대 그룹의 인턴사원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파악했다. 그 결과 지난해 삼성, 현대차, 기아차, 대한주택공사, 한국전력 등은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경우가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인턴 채용을 하고 있지만 신입사원 입사 시에 가산점을 주는 것 빼고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전 원장은 “현재의 금융 위기 상황은 시기적으로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며 “뿐만 아니라 현재 인턴제도는 훈련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오히려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인턴 제도에 체계적 훈련 과정을 도입해 노동시장에 익숙하고 직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