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캐비어를 먹는 사회주의자’란 말이 있다고 한다. ‘진보적 지성인’이란 명색을 내걸면서 실천과 생활에 있어서는 호사와 향락에 빠진 이중적 지식인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이런 이중적 지식인을 두고 다음과 같은 농담도 있다고 한다.


한 공산주의자에게 그의 친구가 “도대체 공산주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가령 나에게 말이 4필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너와 2필씩 나눠 갖는 것이다.”

“너에게는 지금 닭이 8마리 있다, 그것을 나와 나누면 되지 않느냐?”

그의 친구가 되물었다.

“그것은 곤란하다.”

“왜냐?”

“공산주의는 미래지향적인 사상이다. 말 4필은 미래에 갖게될 것이므로 적용되지만, 지금 당장의 닭 8마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미래’를 팔아 ‘현재의 이익’을 챙기는 이중적 지식인이 프랑스인의 유머와 농담 속에서나마 존재한다면, 한국에는 ‘미래’를 빙자하여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헐값에 집어삼키려는 집단이 현실 속의 지식인사회와 정치권에 확고한 기반을 가진 채 현존한다.

이들은 일제식민통치 부역자들의 행적을 조사하는 데 대해 프랑스식 ‘말과 닭 셈법’을 적용한다. 이들은 “군출신의 친일행적 조사대상자를 중좌 이상으로 국한시키자”고 말한다.

“왜냐?”

“중좌 이하의 군장교(닭)는 많지만 중좌 이상의 고급장교(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역사적 진상규명 노력을 폄하하며 ‘미래지향’을 들먹이는 것 또한 가상속의 프랑스 ‘캐비어 좌파’와 현실속의 한국 ‘주류’ 지식인들 사이에 ‘좌우대칭’의 닮은꼴이다.

이들은 또 ‘역사청산’이란 말을 곡해하여 식민통치부역행위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소급입법’이니 ‘부관참시’니 하며 ‘우~’하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일청산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그 누구도 ‘형사처벌’을 입에 담지 않는다.

부역자들 상당수가 해방후 한국사회에서 지배집단으로 군림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일제시기 행적에 관한 언급은 반세기의 철권통치 하에서 억압받았다.

해방 60주년을 앞둔 지금에야 추진되는 작업은 이제 ‘단죄’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기의 물질적 발판에 힘입어 지도급 인물이 되고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했다는 명예까지 얻은 부역자들의 부와 권력에 대해 반세기라는 역사적 ‘시효’를 고스란히 인정해 주는 대신, 허위로 점철된 명예의 기록만을 사실로 돌려놓자는, 서글프지만 현실적인 ‘타협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지난주 초 국회에서 다수의 횡포로 불구가 되었다. ‘그들’의 자신감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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