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러워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하나, K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남들이 선망하는 금융권 공사에 단번에 합격한 동네의 형. 둘, 의대를 나와서 국가고시에 합격해 곧 인턴을 시작하는 아들과 임용고사에 합격해 발령을 기다리는 딸을 둔, 어머니의 친구. 셋, K대 법학과를 나와 서울의 사립대 로스쿨에 합격한 두 명의 친구.

치열한 경쟁과 지독한 불경기 속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현재의 대학생들은 자신의 꿈과는 상관없이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부러움을 느낄 것이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늦지 않은 나이에 ‘번듯한’ 직업을 얻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다.

왜 우리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결국 ‘번듯한’ 직업을 가지면 불안해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한 직업들은 변호사, 의사, 회계사, 변리사, 공무원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서울대 학생들이 이러한 직업을 갖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누구든지 장차 먹고사는 일로 불안해하지 않기를 원한다. 누구나 안정되고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 문제는 이러한 삶이 소수에게만 허용되며 그 소수에 해당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은 열악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이러한 삶을 좇지 않아도  불안감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열려있다면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시험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모르는 희한한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자아를 실현하기보다는 세상이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가야 낙오자 신세를 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사회가 제한해버린 범위 안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제한된 선택의 범위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이나 포부가 아니라 낙오되면 안 된다는 불안감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 개인의 과제와 사회의 모순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 대학이다. 대학 시절동안 나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다른 학우들과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최정우
 사회학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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