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위기의 역사에서 오늘을 바라보다 (1) 들어가며

지난해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후 6개월이 지났다. 세계 각국의 국제공조를 통해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한때 회복세를 보였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9월에 비해 40%가 넘게 추락한 미국 증시를 비롯해 전세계 증시는 폭락을 거듭했고, GM을 비롯해 거대 기업들이 잇따라 파산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선진국 경제가 이미 공황에 빠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연구기관들은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외환위기 수준인 -5% 이하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급속히 냉각되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을 실시하고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실물경제 침체까지

이번 금융위기의 도화선은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점화됐다. 2000년 IT 버블 붕괴로 침체된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시중에 돈이 풀렸고,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다. 집값이 나날이 상승하자 사람들은 빚을 얻어 집을 사기 시작했고, 신용 등급이 낮은 대신 금리가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하지만 금리가 다시 높아지자 이자 부담이 커진 저소득층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기면서 연체율이 급증했다. 그리고 부동산 담보대출에 근거해 만들어진 파생금융상품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채권의 가치가 급락해 급격히 부실화됐다. 파생상품에 투자한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하거나 상업은행에 합병됐다. 신용이 경색되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로 급속히 전이되는 양상이다.

정책, 제도, 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급속하게 세계경제위기를 야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1월 「경향신문」이 경제 전문가 51명에게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41.17%), 정책의 실패(27.45%),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13.73%) 순으로 응답했다. 포스트 케인스주의자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금융의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들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거래돼 전지구적인 금융위기가 초래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들은 시장과 자본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규제가 다시 복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의 실패라고 응답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이 이번 위기를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은행들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담보 대출을 늘리게 한 지역재투자법(CRA) 개정과 연방준비은행(FRB)의 방만한 통화 정책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번 위기가 제도나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번 위기를 통해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되풀이되는 위기의 역사 마르크스, 케인스의 재조명

오늘날 경제 위기를 맞아 다시 화두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케인스주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들은 이미 지난 위기의 역사에서 뜨겁게 다뤄져왔다. 민주주의와 함께 서구 근대 문명의 기반이 된 자본주의는 16세기 중상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고전적 자유주의와 수정자본주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렀다. 산업혁명을 통해 확립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위기는 반복해서 찾아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 이론들이 등장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공황이 10~20년 주기로 반복해서 일어났던 19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에서 “자본가에 의한 생산수단과 생산결과의 독점과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달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전환된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에서 이윤추구 활동은 필연적으로 과잉생산을 일으켜 ‘이윤율’을 감소시키고 그 결과 대자본가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간의 계급투쟁이 심화돼 ‘사회혁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 혁명을 통해 현실에 적용됐고, 실제로 소련의 계획경제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대공황을 겪는 동안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미국 노동자의 25%가 실직한 대공황을 거치면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 유효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케인스의 이론이 경제정책에 도입됐다. 수정자본주의 시대에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감독과 규제가 강화됐고 사회복지제도가 확충됐다.

전환기를 맞이한 세계경제 어떤 이론이 ‘적자’인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주자인 하이에크는 케인스의 이론이 등장한 193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정자본주의가 유례없이 긴 장기호황을 이뤄내면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주목받지 못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또 한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시카고 학파가 조명을 받게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 사조는 전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는 구닥다리 이론으로 여겨졌다.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논해지는 오늘, 다시 케인스와 마르크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대학신문』에서는 ‘위기의 역사에서 오늘을 바라보다’라는 주제로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경기침체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0년 IT 버블 붕괴를 순차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경제위기가 어떻게 극복됐고 그 과정에 어떤 경제 이론이 기여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 분석해 지난 위기의 역사가 현재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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