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난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정책은 그만
사회 기득권세대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야 할 때

고등학교 때는 그때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붙는 것과 떨어지는 것, 그때의 내게 세상은 둘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자에 편입되어야 했다. 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의 고생은 없다, 그 기대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의 문턱을 넘어서면 즐거운 인생이 시작될 거라는 작은 믿음을 품었다. 얼마 간은 정말 그랬다. 젊음을 한껏 만끽하며, 동기, 선배, 후배들과 옹기종기 둘러 앉아 어설픈 논리로 포장된 궤변을 쏟아내며 술잔을 기울였던 잠깐의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그때는 학자를, 셰프를, 공무원을, 프로야구선수를, 기자를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눈을 반짝이며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새삼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눈앞에서 수백, 수천 개로 쪼개지는 찬란한 세상을 대면했달까. 그런데 야속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다시금 세상은 빛을 잃고 둘로 수렴해 버렸다. 어디라도 취업을 한 자의 세상과 그마저도 못한 자의 세상. 대학을 졸업할 쯤에는 꿈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기개는 잊어버린 지 오래, 나는 악몽 같은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미리 써 놓은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난으로 외환시장, 증권시장 등 시장이란 시장은 죄다 얼어붙었다. 이것이 실물경제에까지 전이돼 생산도 소비도 투자도 모두 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학교를 떠나 밥 벌어먹고 살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기업의 상반기 채용 계획도 발표되는 족족 ‘채용 계획 없다’거나 ‘정규직을 줄이고 인턴사원을 늘리겠다’는 소리뿐이라 답답하기만 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향후 L자형 경기 침체로 진입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당분간 취업난 상황이 호전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 공황상태다. 취업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 사회 진출의 신고식 치고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세상살이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진리를 새삼 되새기게 해 준다.

취업대란 속에서 헐떡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어깨의 짐을 덜어주겠다고 정부가 직접 나서, ‘초임삭감’과 ‘인턴확대’ 카드를 꺼내 놓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사회 초년생들의 초임을 깎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소위 잡셰어링을 대폭 장려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초임삭감으로 재정을 확보한 후 인턴 고용을 확대해 청년실업률을 감소시켜 사회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가 내재돼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턴이라는 게 결국은 비정규 임시직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장도 없다. 인턴의 증가를 궁극적인 실업률 감소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 당장의 볼멘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언 발에 오줌 누고 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대학교육까지 받고서도 결국 2∼3개월 임시직으로 편입된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약 100만 명의 청년이 실업 상태에 있다고 한다. 구직자의 절반가량이 취업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설문조사도 있다다.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은 사회 초년생을 일개 약자로 취급하고 있는가. 기득권은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고사리 손을 뿌리쳤다. 약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에게만 경제 위기의 고통을 분담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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