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위기의 역사에서 오늘을 바라보다 (2) 대공황

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19세기 자본주의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불황과 실업을 예외적인 사항으로 여겼다. 그들은 불황과 실업이 발생한다 해도, 임금과 상품가격이 하락하면 곧 수요와 고용이 증대돼 불균형을 해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국가 간 경제 격차의 확대,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이런 고전파 경제학의 균형이론을 비웃는 사건이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의 대공황 기간 동안 세계 공업생산과 물가는 각각 약 2/3, 1/2 수준으로 폭락했다. 왜 시장은 고전파 경제학의 예측대로 회복되지 못했는가. 자유방임 시장경제는 대공황 시대의 대규모 주가 폭락, 25%에 달하는 실업률, 국제 무역과 협력의 단절을 비롯한 여러 경제적 문제에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당시 고전파 경제학 이론으로는 1930년대 대공황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케인스에 따른 재정팽창
경제위기의 해결책인가

대공황의 경험은 미시이론만 존재하던 경제학계에 거시경제학을 등장시켰다.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내놓으며 거시경제학을 창시한 케인스는 유효수요 부족을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에 빠진 정부는 케인스가 제시한 ‘유효수요 이론’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경제개입정책을 실시했다. 유효수요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통화 발행으로 조달한 재원을 가지고 공공사업을 확대하는 총수요 확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 유효수요 이론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해 낸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삼기 때문이다. 때문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불황에 대한 해법으로 확대 재정금융 정책을 내세운다. 한편 1930년대 대공황을 종식시키는 데 2차 대전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영구군비경제 등 전쟁 특수로 인해 대공황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과 같이 현재도 자금 유동성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발발로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와 관련해 각 국가들은 긴급구제금융과 재정지출 확대 등 케인스주의적인 정부 개입 정책을 펼치려 한다. 폴 크루그먼 교수(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는 경기부양책의 핵심은 공공지출을 크게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금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실업자 고용이나 고용유지 등 생산적인 용도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크루그먼 교수는 공공지출 정책이 신속히 집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뒤늦게 경기부양책이 실시된다 해도 이는 경기하강을 늦출 뿐 막을 수는 없다”며 “그동안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기업과 소비자는 지속적 불황을 예상해 지출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에 빠진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 개입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의 의견을 반영한 듯 미국은 올해 경기 부양 지출을 늘리면서 재정 적자가 GDP의 12.3%인 1조7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정 적자 규모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다. EU는 경제위기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 규정을 올해부터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재정팽창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각국은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팽창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증가된 국가 부채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소득분배 불균형으로
경제위기 악화될 수도

크루그먼 교수는 현 세계 경제위기를 제2의 세계대공황으로 단정짓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수년간 25%를 넘어섰고 현재 실업률은 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면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이 소득분배의 심각한 불균형이 일어나 세계 경제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현 세계 경제위기와 1930년대 대공황을 비교해볼 때 유사한 측면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1930년대 대공황과 현재 세계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모순이 폭발해 생긴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와 연관된 이론이 과소소비설이다. 과소소비설이란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생산된 부가가치는 대부분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돌아가지 않아 노동자는 상품을 구입하지 못하게 돼 결국 불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성진 교수(경상대 경제학과)는 “최근 경제위기의 배경에는 소득분배의 차이 등 실물경제의 모순이 있다”며 “이런 점에서 1930년대 대공황과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전파 경제학이 1920년대 말을 풍미했듯이 현 세계 경제위기 직전까지도 신자유주의 사상이 전 세계 경제계의 주된 조류였다. 더불어 1920년대 말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던 소득분배 수준과 2006년의 소득분배 수준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1928년 미국에서 상위 10% 소득은 총소득의 50%를 차지했고, 2006년 미국 상위 10% 소득도 전체의 50%에 이르고 있다.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 경제학과)는 “미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그간의 높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감소했고 절대빈곤층이 크게 증가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빈부격차가 심해져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곤층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진작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가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 지원과 더불어 서민층에게 지원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모든 전망이 불확실한 현재
새로운 자본주의도 구상해야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자본주의의 성격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즈」, 「뉴스위크」는 작년 가을 금융위기 국면에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모델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선언했다. 세계의 주요 매체들은 이제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온 바의 자본주의’의 종언을 전망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세계 경제계의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부편집장인 마르틴 울프는 이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를 구상하고 대비할 것을 심각하게 제안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케인스는 “이 위기를 미래의 경제사학자가 회고한다면 역사의 주요 전환점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전망이 불확실한 현재, 우리는 이번 세계 경제위기가 ‘역사의 주요 전환점’이 될 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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