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으로 소설과 영화 들여다보기

성 정치학
케이트 밀렛 지음┃김전유경 옮김┃이후┃744쪽┃2만8천원
『성 정치학』과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는 각각 1970년과 1993년에 출간된 제법 오래된 책이다. 연구 대상이 다르고 집필 시기에도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 프로이트 이론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이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점 등에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밀렛의 『성 정치학』은 헨리 밀러의 『섹서스』에 나오는 노골적인 섹스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밀렛이 이와 같이 도발적인 서두를 쓰게 된 이유는 ‘섹스’를 권력분석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위해서였다. 문학작품 속에서 섹스 장면은 연인들의 사랑이나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등장하지만 실제 그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밀렛은 섹스를 “문화가 승인하는 다양한 태도와 가치를 보여주는 응축된 척도”(71쪽)로 정의하고 남성 작가들의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섹스 장면을 분석함으로써 남녀 간 권력 관계의 구조와 배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밀렛은 세계적 작가인 D. 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의 작품을 분석해 그들이 형제애적 유대를 유지하고 여성을 완전하게 종속시켜 지배하는 방법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나 밀렛이 모든 남성 작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둑 출신 작가였던 장 주네는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은 가부장제 문화가 만들어 낸 기질적 범주(남성성과 여성성)가 상당히 자의적이고 허구적인 것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네가 여성을 억압당하는 집단이자 혁명적 힘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제2의 성혁명’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후 밀렛은 가부장제가 부여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어, 양성성(bisexuality)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기획으로 나아간다.

밀렛이 그동안 사적 영역에 속해 있던 ‘섹스’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기존의 여성운동이 가지고 있던 문제와 관련돼 있다. 초기의 서구 여성운동은 여가와 교육수단을 가지고 있던 부르주아 여성들에 의해 주도됐고, 그들은 참정권과 같은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성이 처한 현실은 법적 권리만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여성운동은 참정권을 얻음과 동시에 상당한 힘을 소진해버렸고, 밀렛이 주장하듯 당시 여성노동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여성의 삶은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 가족, 섹슈얼리티라는 ‘사적 영역’에서도 해석돼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바로 새로운 여성운동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뤘던 밀렛의 『성 정치학』은 ‘페미니즘 제2물결’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고전이 됐다. 발간 첫해에 무려 8만부가 팔렸다는 사실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

밀렛은 프로이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성역할 분담에 대한 기능주의적 태도를 ‘반동적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억압과 금기의 대상이었던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켰다고 일컬어진다. 밀렛 역시 이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남성성과 여성성을 확증해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격이 수동성, 마조히즘, 나르시시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러한 특징이 억압적인 사회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이를 영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괴물』의 바바라 크리드 역시 프로이트에 대해 비판적이다. 크리드는 공포영화가 재현하는 여성괴물이 가부장제의 속성을 가졌음을 분석하면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이전까지 공포영화에는 남성괴물과 여성괴물이 모두 등장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성괴물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다. 공포영화 속의 여성은 남성괴물에 의해 희생당하는 대상이거나 괴물을 처치한 남성에게 수여되는 ‘보상’일 뿐이라는 것이 당시 여성주의자들의 주된 비판이었다. 그러나 고대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공포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등장하는 괴물 중에는 여성괴물이 적지 않게 존재해왔다. 거세하는 여성 성기, 즉 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 이빨 달린 질)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 사례다.

프로이트는 『공포증에 대한 분석』에서 ‘꼬마 한스’ 이야기를 다룬다. 한스는 엄마에게 ‘고추’가 없음을 보고 그것을 ‘거세된 고추’라고 해석했다. 그는 자신의 성기도 잘려나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게 됐고, 엄마에 대해서는 ‘억압된 성애적 갈망’을 가지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크리드는 프로이트가 ‘거세하는 어머니’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상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프로이트는 여성을 ‘거세하는 존재’가 아닌, ‘거세된 존재’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서 여성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행위의 주체일 수 없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여성괴물들이 ‘바기나 덴타타’로 등장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찢어진 입과 더러운 분비물, 상스러운 말과 구토 등의 온갖 ‘비체’(卑體; abjection)로 재현되고 있다. 저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통해서 여성괴물들이 발현하는 공포의 내용 속에 ‘어머니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음을 주장했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주체의 형성은 주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비체’들을 외부로 방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어린 아이에게 이것은 ‘배변 훈련’으로 대표되는데 보통 어머니가 훈육자가 된다.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는 훈육자임과 동시에 출산과 월경을 하는 ‘비체’ 그 자체로 인식된다. 공포영화에서 여성괴물은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크리드는 「에이리언」, 「엑소시스트」, 「싸이코」 등의 영화를 다루면서 자신의 가설을 논증한다. 그리고 죽음과 공포가 생명의 탄생과 성적 쾌감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기를 보여주는’ 행위는, 혐오와 경멸일 수도 있고 반대로 유혹과 구애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즐기는 공포영화 속에서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원초적인 무의식의 성격들을 체계적으로 따져볼 수 있다면, 이 책은 대중적인 교양서로 선택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저자는 공포영화와 그 담론들에 대해 여성주의적 개입을 하면서도 정작 여성 관객의 느낌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크리드는 ‘여성이 여성괴물이라는 존재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일까’라고 물으며,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복잡하고 텍스트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289쪽). 그러나 그 이상의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나 바기나 덴타타와 거세공포 등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됐는지, 그 주장의 한계는 무엇인지, 또 새로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 해석할 수 있는지는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책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정신분석과 여성주의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김혜영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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