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공익적 기능

‘농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아 ‘우리’를 제목 앞 부분에 첨가하게 되었다. 농업 없이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에 농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글로 써서 주장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농업을 영위하여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무엇이든지 수입이 가능한 시대에 왜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우리’가 ‘우리’ 땅에서 생산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교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경쟁력이 약한 우리 농업은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농업은 경쟁력으로 환산될 수 없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농산물을 우리 땅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농업은 사람이 먹는 것을 생산하는 유일한 산업으로 사람의 건강과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설명할 나위 없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식품의 안전성은 식량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에야 확보될 수 있는 것이므로 식량 공급의 안전성과 식품의 안전성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가 소비하는 농산물의 대부분을 해외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고 하더라도 식량공급의 안정성을 보장 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농산물을 우리가 생산할 필요가 있고 이렇게 최소한의 우리 농업을 유지해야만 식량공급의 안정성과 식품의 안전성이 다 같이 얻어질 수 있다. 

 둘째, 농업이 있기에 사람은 비로소 자연의 물질 순환체계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농산물을 재배하여 먹은 다음 그것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고 찌꺼기를 배설한다. 자연은 그 찌꺼기를 밑거름으로 하여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사람은 다시 그 위에 농작물을 경작한다. 이렇게 농업은 사람을 자연과 연결시키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우리 국토와 우리 환경에 대한 참된 인식은 농업을 통하지 않고는 얻기 힘들다.

농업을 경제적 시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돼

셋째, 우리 농업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오면서 한반도의 자연을 이용하는 최선의 지혜를 집적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 민족 정체성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말이 우리 생각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면 우리 농업은 우리 삶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세계화가 진척되어 인류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보전하는 것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지금, 우리 농업을 지킬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비용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 농업이 국토면적의 19%와 인구의 9%를 점유하면서도 국내총생산의 4%를 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는 비효율적인 산업으로서 쓸데없이 많은 토지와 인구를 점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농업은 9%의 인구가 국내총생산의 4%로 만족하며 국토의 19%를 돌보는, 그 나름대로 효율적인 산업이다. 우리 농업이 담당하고 있는 노동력 흡수, 지역사회 유지, 식량 공급 등의 공익적 기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렇게 우리가 농업을 지킨다는 것은 비교적 싼 비용으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 식품의 안전성, 우리 국토와 환경에 대한 참된 인식,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여러 가지 농업의 부수적 기능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업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 위에 벌여 놓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 산업’이다.  

이태호 교수(농생대ㆍ농경제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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