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광화문과 시청일대에서 약 3개월 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내건 대규모 촛불집회가 매일같이 열렸다. 촛불집회의 열기는 지난해 8월 이후 점차 사그라졌고 촛불집회의 기억은 우리의 머리와 생활 속에서 다시 멀어져갔다. 하지만 올해 2월 그 기억을 되살려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시위 관련자의 재판을 보수적 성향의 판사에게 집중 배당한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집회사건을 일반사건으로 분류해, 판사들에게 무작위로 배당하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보수 성향의 판사가 부장을 맡고 있는 재판부에 촛불재판을 몰아주었다. 이에 대해 일부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했고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집회에 관련된 재판을 맡고 있는 법관들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자 메일을 보냈고 전화로도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직 대법관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사법행정을 정치화했다. 법관은 법에 따라 양심적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신영철 대법관은 법원장의 지위를 이용해 재판에 정치적으로 개입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의 생사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법관이 정치적인 이해 관계에 따라 재판에 관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의 정의를 구현하지는 못할망정 현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신영철 대법관의 모습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며 사법부의 치욕이다.

사법계 안팎의 자진 사퇴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은 이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소환돼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법관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징계가 고작 정직 1년이라고 한다. 정직 후 돌아올 신영철 대법관이 과연 얼마나 달라져 있겠는가. 이런 경우를 위해 헌법에는 탄핵심판제도가 있다. 보통의 징계 절차로 처벌하기 어려운 고위공무원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국회가 해당 공무원을 탄핵소추하면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통해 그 공무원을 파면할 수 있는 제도다. 신영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할 용의가 없다면 국회가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일벌백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채상원 지리학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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