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자 1754호 5면
“나는 나약하고 힘없는 외국 출신 아무개” 기사를 읽고

필자의 고향인 한반도 최남단의 작은 시골 마을은 필자의 남동생을 마지막으로 마을 학생들의 맥(脈)이 끊어졌고, 환갑을 넘긴 어른들만이 외롭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고요하던 마을에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몇 년전 귀농한 사촌 형이 베트남 여성과 국제 결혼을 하게 됐고,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20년 만에 들린 아기 울음소리가 반가운 것은 부모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였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지연이는 그렇게 태어났다.

지난 겨울 명절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함께 큰집에 지연이를 보러 갔다. 이제 제법 커서 방안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지연이가 예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보여 흐뭇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함께 지연이의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연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만큼 다 컸는데 이상하게 말을 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부모님께 살짝 여쭤봤더니 말이 늦다고 하셨다. 갑가지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기 시작했다. 언어습득론에 비춰봤을 때 지연이는 말을 빨리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머니는 한국어가 서툴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을 하느라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집에 계신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TV를 보시기 때문에 한글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함께 어울려서 놀만 한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하루하루를 외롭게 지내야 하는 지연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정부와 대학, 자치 단체, 종교 기관에서는 다문화 가정과 관련한 많은 정책과 계획들을 발표하며 이방인들을 껴안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할 일이다. 농사일과 가사에 바쁜 이주여성을 읍내로 불러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다문화 가정을 위한 일인가?

교육의 첫 걸음은 학습자에 대한 이해다. 정부의 정책 또한 혜택을 누리게 될 국민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는 세심한 배려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돌봐 줄 어른들도, 함께 놀 친구도 없는 지연이에게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김가람 국어교육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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