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조9천억원 ‘슈퍼추경’
도입에는 이견 없지만
재원조달 방식 두고 ‘갑론을박’
장기적 계획 확충 해야

지난 24일(화) 정부가 국회에 28조9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심의를 요청했다. 이번 추경은 3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추경’이다.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확대가 필요한 때”라며 “추경을 편성해 일자리 유지․창출과 민생 안정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모두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추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와 재원조달 방법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 추경 도입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추경 도입, 불가피해=삼성경제연구소 강성원 수석연구원은 “현재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9%대에서 8%대로 떨어졌으며 미국, 일본 등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실정”이라며 “세계적 경제위기로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이 동시에 침체되면서 우리의 노력만으로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라디오 연설에서 “지금은 추경의 통과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추경 통과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황성현 교수(인천대 경제학과) 역시 “추경은 적시에 집행돼야만 경기부양 효과가 있는 만큼 예산 집행에 대한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끌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국채발행 예산조달, 빚내서 잔치 벌이는 꼴=추경 도입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추경의 재원 마련 방식을 놓고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예산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증세가 활용된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반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증세를 통한 재정정책을 펼쳤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한 일본을 예로 들며 “경기침체 상황에서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민간의 소비․투자 여력이 감소해 추경으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안진걸 팀장도 “증세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역설적으로 경기침체를 이끌 수 있다”며 “증세보다는 13조5천억에 달하는 ‘부자감세’를 철회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황성현 교수도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이념과 재정확장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두 가지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추경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감세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가 ‘슈퍼추경’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발행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적자국채를 19조7천억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30조원의 추경에 경제성장률 감소로 인한 세수 부족분 10조원까지 합산하면 올해 적자국채는 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경우 GDP 대비 총 국가채무 비율은 37.2%까지 높아진다. 때문에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채권물량이 금융시장에 대량으로 풀리면 채권가격의 하락과 함께 금리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돼 결국 장기적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금리가 상승할 경우 투자와 소비의 기회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업투자 및 민간소비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며 “채권발행이 정부의 의도와 달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확충을 위한 장기적 접근 필요=전문가들은 추경도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운영에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주성 교수(이화여대 경제학과)는 “2009년 예산안이 짜여진 시기는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1~12월경”이라며 “3개월 만에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정부가 2009년 예산을 잘못 짰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경제상황을 좀 더 신중하게 예측했다면 3개월 만에 추경을 편성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겠나”라며 “올해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일정 수준의 재정확대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질타했다.

국가 채무가 늘면 재정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진다. 때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만우 교수(고려대 경제학과)는 “향후 단기간 내에 한국 경제가 회복되기 힘들기 때문에 대규모의 추경이 몇 차례 반복될 것”이라며 “이런 추세라면 몇 년 내 우리의 재정 건전성은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3년마다 시행되는 기금 운영 평가를 더 자주 시행하고,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재정개혁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성 교수는 “한국은 재정전달 체계가 허술해 예산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기 위한 재정전달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체계적인 평가기구를 설립해 예산집행 상황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예산집행자들이 사후 보고서를 발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