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학술 동아리
사라져가는 세미나 문화
스스로 고립되는 공부 아닌
서로 관계 맺는 연대 필요해

관악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내가 처음 학교를 들어왔을 때와 많은 게 변했지만 그 중 하나 꼽을 수 있는 것은 학술 동아리, 문학 동아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일게다. 학생회관의 동아리방 앞에는 사람의 흔적은 없고 식당 전단지만 날리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취미 동아리나 실용적인 지식을 위한 동아리들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같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대학생활의 한면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만 해도 정말 과방, 동아리방은 ‘삶, 사랑, 학문의 공동체’였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같이 모여서 밥먹고, 이야기하고, 세미나하고.

원래 학문(學文)이란 말은 중용(中庸)에서는 ‘문학(問學)’이라고 쓰였다. 지금 대학의 학문(學文)이 일방적으로 문(文)을 배우는(學) 공간이 되었다면, 원래의 학문의 의미는 묻고(問) 배우는(學)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학문화에서 세미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하나 더 습득하고 소유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의 교육과 공부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부의 사적 소유에 기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전문 지식의 축적을 통해 개인 자신만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공동체’라고 번역하는 코뮨(commune)의 어원학적 기원이 ‘선물(munis)’을 ‘나눔(com)’, 또는 그 나눔을 통해 ‘함께함(com)’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선물을 나누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근대의 고립되고 원자화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라는 신화를 넘어, 경쟁의 원리를 넘어, 신자유주의를 넘어 우정의 경제학, 우정의 정치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전략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혼자 힘으로 어렵기 때문에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언설적 차원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어떤 관계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음으로써만 자신의 능력, 역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 공부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고립적으로 만들고, 자신을 또 다른 갇힌 자아로 만들어 내는지 답답해하는 경우들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다양한 공부를 통해, 고민하고, 묻고,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 자신이 수많은 다른 ‘-되기’의 과정을 겪는 것, 집합적 관계들을 구성해내는 능력을 배우는 것! 그것이 대학생활에서 세미나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닐런지.

한 줄 요약.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공부해서 남 주자!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같이 세미나할 친구들을 조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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