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아이슬란드는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해외채무가 1,205억 달러(2008년 2?분기 기준)에 이르던 아이슬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신용이 급격히 경색되면서 해외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는 사태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외환보유고가 36억7천만달러에 불과했던 아이슬란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해 금융허브로 급부상한 유럽의 강소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아이슬란드의 파산은 자본에 대한 규제와 장벽을 철폐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진 경제
금융에서 활로를 모색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었다. 1970년대 ‘영광의 30년’으로 불리는 호황기가 끝나고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시장개입을 요체로 유례 없는 긴 호황기를 가져온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가 경기후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는 4배나 폭등했고, 1974년 한해 동안 전세계 공업생산량은 10%  가량 저하됐다.

1980년대 들어서도 장기침체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익이 낮은 실물부문보다 금융부문에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3년 국제통화제도가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탄생한 외환시장에 많은 돈이 몰렸다. 환율변동에서 오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은 당시 국내 금리규제나 과세제도 등으로부터 분리돼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역외(域外)금융시장에 집중됐다.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 정부는 자국에서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규제를 완화했다.

같은 시기 금융공학이 발전하면서 파생상품의 혁신이 거듭됐고 금융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을 자회사로 운영하는 등 금융부문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미국의 비금융기업 전체가 획득한 이윤에 대한 금융이윤의 비율은 1970년대 10% 미만에서 1990년대 45% 이상으로 상승했고, 최근 파산위기에 처한 제너럴모터스의 경우 그 비율이 80%에 달하기도 했다. 차입과 금융공학을 통해 덩치를 키운 금융자본은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며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했다.

단기수익성 집착한 금융화
실물경제 위기의 대안 못돼

엄밀히 말해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금융자유화와 금융세계화 정책은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를 살리지는 못했다. 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촉진해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1970년대 2.4% 성장한 세계경제는 1980년대 1.4%, 1990년대 1.1%로 성장세가 계속해서 둔화됐기 때문이다. 조원희 교수(국민대 경제학과)는 “금융의 지배력이 증대하면서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보다 단기수익성에 집착해 ‘저임금->총수요감소->수출시장에서의 경쟁격화->임금저하’의 악순환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소비수요의 위축으로 실물경제의 성장여력이 쇠퇴하자 금융자본은 점점 더 생산 영역에서 이탈해 투기자본으로 변모했다. 로버트 브레너 교수(미국 UCLA 역사학과)는 “과잉설비라는 실물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산시장 거품을 키워 쪼그라든 소비를 회복시키려 한 시도가 이번 대재앙을 불러온 싹이 됐다”고 말했다.

금융부문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자금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금융 본연의 역할에 문제가 생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조복현 교수(한밭대 경제학과)는 “금융을 자유화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생산성이 높은 기업으로 자본이 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왜곡된 자금 분배를 야기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으로 돈이 원활히 흘러가기보다는 오히려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역방향으로 빠져나갔고, 주가 역시 실제가치를 반영하기보다는 사람들의 투기적 심리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조복현 교수는 “금융자유화가 금융을 통해 실물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금융 자체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규제완화 역주행
금융과 실물 간 균형 잡아야

미국 금융시스템의 실패를 선언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는 금융 실패를 부른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로 1999년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를 꼽는다. 그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규제하는 이 법안이 폐기되면서 위험한 투자와 과도한 차입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의 문화가 상업은행까지 휩쓸어 위기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198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경제관료들은 다시 글래스-스티걸 법의 부활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세계적 추세에 역행해 지난달부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업무영역 통합을 허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됐다. 지난 정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동북아 금융허브 건설도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유철규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금융의 불안정성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금융업 육성은 투기적 자본을 늘려 고용과 투자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이나 고용기반과 연계하지 않고 오히려 제조업을 대체하는 금융정책을 추진하다가는 아이슬란드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산업의 나라 아이슬란드가 과도한 외자차입과 거품경제로 이룬 금융허브의 꿈은 이번 위기로 일장춘몽의 막을 내렸다. 이에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비슷한 꿈을 꾸던 한국경제의 회복은 금융 중심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있다. 조원희 교수는 “한국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화학공업과 첨단산업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갖고 있다”며 “금융은 어디까지나 생산을 돕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자본이 산업의 수익 창출 능력과 무관하게 부풀어오르면 결국 거품은 붕괴한다”는 베블렌의 한세기 전 경고가 오늘날 세계경제에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한국은 아시아의 아이슬란드인가’라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선 금융과 실물경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잡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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