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북한의 미래와 국제협력’ 학술회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한가운데 놓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는 북한 문제를 논의할 때 이 네 나라 외에 다른 나라들도 있다는 것을 가끔 잊을 때가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통일평화연구소와 주한 캐나다 대사관이 지난 13일(금) 공동주최한 ‘북한의 미래와 국제협력’이라는 국제학술회의는 북한 문제가 단지 남한이나 6자회담에 참가 중인 강대국만의 골칫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케 한 드문 기회였다.
 

이 회의를 처음 생각한 쪽은 캐나다 대사관이었다. 북한 문제를 6자회담의 바깥에서 바라보는 회의를 열고 싶다는 캐나다 측의 제안에 통일평화연구소가 호응했고, 개최 소식을 접한 영국, 호주, 이탈리아 대사관이 같이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처음 구상보다 규모가 매우 커졌다. 이날 회의에는 5개국 대사들이 모두 참석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탄탄하고 내실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또 북한 문제를 6자회담 비참가국들의 시각에서 논의한다는 참신한 주제 때문이었는지 이날 회의에는 총 5백여명에 달하는 청중이 참여했고 그들의 자세도 진지했다.

◇한반도 비핵화 위한 6자회담 비참가국들 역할 점점 늘어날 것=이날 회의에서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김병국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가 사회를 맡고 웨이드 헌틀리 소장(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스팀슨센터), 외교안보연구원 전봉근 박사가 발표한 ‘한반도의 비핵화’ 세션에서는 우선 가장 첨예한 북핵 문제를 다뤘다. 헌틀리 교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을 ‘포용과 대립’ 그리고 ‘상호작용과 무관심’의 두 축으로 나눠 클린턴에서 부시, 오바마로 이어지는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 전봉근 박사는 북한 핵문제가 6자회담 참가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이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유럽연합(EU),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체코 등 다양한 나라들이 참여한 전례에서 보듯 북핵 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 비참가국들의 역할은 이미 상당히 중요하고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에너지 위기, 경수로 건설보다 기존 설비 정비해야=오후에는 북한의 경제 문제와 인권 문제가 각각 다뤄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발표는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장인 피터 헤이즈 박사의 북한 에너지 위기 해결에 대한 제안이었다. 헤이즈 박사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방치되다시피 한 북한의 발전 및 송전 시설이 이제 그 기계적 수명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므로 지금 빨리 손을 쓰지 않을 경우 북한 전체의 에너지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그 대안을 함께 제시했다.

헤이즈 박사는 “북한이 경수로나 송전 설비에 대한 대대적인 개수를 원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낙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수로를 건설해도 지금 북한의 송전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북한 전역의 송전 시설을 새로 깔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액과 시간이 요구되는데 지금 북한의 전기 사정이 그런 여유를 부릴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헤이즈 박사는 이런 국면에서 북한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설비가 아니라 기존 설비를 정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발표와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회의는 직접적 이해 관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이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일깨워 준 좋은 기회였다. 또 이들 나라와의 공조를 잘 유지하는 것이 북한 문제 해결에 의외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 날의 큰 수확이었다. 


이상신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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