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한동안 카드빚 때문에 자살한다고 했고, 대학 입시가 청소년을 자살로 내몬다고 했다. 외환위기 때처럼 최근의 금융 위기 역시 또 다른 자살 도미노를 불러오고 있다. 급기야 자살 공화국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였고 자살률 세계 최고 수준, 사망 원인 중 4위 등의 통계치가 이제 낯설지도 않게 됐다. 심각한 경제 양극화, 급격한 사회 변화, 심한 경쟁 체제, 급속한 노령화 등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자살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마 모두 관련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가치관의 부재, 내버려진 우리 이웃들의 등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사회 지지체계의 부재 등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현상이 자살 증가의 원인이라면 더욱 걱정스럽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고, 또 해결책은 바로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자살 현상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현상이나 병리가 개인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문제가 해결돼야만 자살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자살은 그 자체가 병적인 행위이며, 예방과 치료의 대상이므로 그 자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자살에 관하여 알려진 사실 몇 가지를 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70%는 우울증 등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사고가 높은 사람의 뇌에는 기분과 충동 등을 조절하는 변연계의 세로토닌 활성도가 저하되어 있다. 우울증에서도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과 함께 세로토닌 활성도가 저하되는데, 이렇게 되면 기분이 우울해 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 비관적인 생각이 팽배해지며 사실과 달리 현실을 암담하게 받아들이고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병적으로 찾아내는 해결책이 자살인 것이다.

카드빚을 진 사람도, 입시에 실패한 사람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도 모두 마음 아프고 힘들지만 참고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해결책을 찾는다. 본인의 노력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목표를 낮출 수도 있고, 세월이 상처를 치료해 줄 수도 있다.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모두가 우울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은 일부에서 나타나는 병적인 적응 상태이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병적인 적응 상태에서 찾아낸 병적인 해결책이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완벽함을 추구하고 성취 욕구가 높으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 스스로의 만족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유혹적인 대안으로 자살을 생각하기 쉽다. 자의식이 강한 이들은 그러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살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에 관해 극단적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누구나 살다 보면 우울할 수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치료 받을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쉬쉬하면서 감추려고 하는 태도이다. 그러다 보니 당장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가 2백만 명은 될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정작 주변에는 우울증 환자는 한명도 없다고 하고, 치료 받는 환자는 20%에 불과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에도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면서 우울증 병력은 극구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울증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상황에서 자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 관하여 기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학교 교육이 이른 시기에 뇌와 정신건강, 우울증과 자살에 관하여 합리적 접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하규섭 교수(정신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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