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정부-시민단체 간 마찰 증가
경찰의 과도한 시위 진압 구설수
소프트파워 포기하고 하드파워만 강요해서야
공권력 집행기관에 대한 감시 필요해

민주화 원년으로 여겨지는 1987년, 6·10항쟁이 일어난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당시 국민은 군부독재의 공권력에 맞서 민주화와 개헌을 외쳤고 그 요구에 따라 결국 한국은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공권력 집행기관인 검찰은 꾸준히 권위적인 공권력 집행을 줄여 왔다. ‘권력의 시녀’라고 비판받던 검찰은 1999년 9월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서 정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경찰은 1998년 이후부터는 시위 진압에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대한민국은 조금씩 민주주의 사회에 근접해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로 민주화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정부 집권 후로 공권력 남용 갈수록 심해져=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의 한 관계자는 “쇠고기 파동,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사망, 대법관 재판 개입, 언론인 구속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의 마찰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불법·폭력 시위는 2005년 77건, 2006년 62건, 2007년 64건으로 감소 내지 답보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2008년에는 상반기에만 68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촛불집회의 영향으로 시위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전·의경 출동 횟수는 2005년 475회, 2007년 599회, 2008년 상반기 660회로 꾸준히 증가했다. 촛불집회를 불법·폭력 시위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에 비해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상대적으로 빈번해졌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인해 6명이 사망한 용산 철거민 사건도 이명박정부의 공권력 과용으로 초래됐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주의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며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2005년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던 농민 두 명이 경찰의 방패에 맞아 사망하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돼야 한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태도와 대조적이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NGO대학원)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권력자는 사과를 표하고 경찰총수를 교체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 정부가 국민의 불만을 힘으로 억압하고 있다”며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힘으로 다스리려 한다면 대중의 반발과 사회계층 간 대립이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공권력에 기대는 이유=시민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왜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동천 교수(전북대 정치외교학과)는 “현 정부는 법을 국민을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의 인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정부는 공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출간한 자신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국가권력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으로써 규율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라며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근 교수(국제대학원)는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의 ‘소프트파워’ 이론을 들어 “정부의 지지율이 30%대에서 고착화되면서 정부는 나머지 70%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소프트파워’를 포기해 버렸다”며 “힘을 통해 강제로 국민을 이끄는 ‘하드파워’로 무리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권력 집행 감시기구 설립해야=지난 3월 용산 참사 시위대에게 경찰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나라가 어딨느냐”며 격분했다. 정부와 여당은 “선진국에서는 공권력을 엄격히 집행하기 때문에 불법 시위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의 시위문화는 한국의 시위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측은 “외국의 불법시위 현장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불법시위는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는 편”이라며 “시위 과정에서 강도, 방화, 약탈 등이 자행되는 외국에서는 공권력을 통한 통제가 중요하지만 한국은 이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무차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공권력 집행기관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미네르바 구속 당시 “실정법을 위반하기만 하면 즉시 처벌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독재시대의 유물”이라며 “범법 행위의 의도와 내용 등을 입법 취지에 비춰보고 사회적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지 판단해 공권력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시민단체는 공권력 집행기관을 감시하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국민연대 조관숙 위원장은 “외국과 달리 우리는 공권력 집행기관에 대한 감시기구가 없다”며 “공권력 집행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힘 없는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검·경찰과 사법부”라며 “국민을 지켜줘야 할 기관들이 역으로 국민을 억압한다면 국민이 호소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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