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OVER THE BLUE, SNU 2009

지난 몇 년간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 건의 연쇄살인 사건을 통해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는 마치 ‘우리 동네 아저씨’와 같이 친숙한 것이 돼버린 듯하다. 최근 사이코패스 테스트나 사이코패스를 알아보는 법 등이 유행하고, 인터넷에서 ‘당신의 직장동료가 사이코패스일 수 있다’는 식의 훈수나 ‘제가 사이코패스인 것 같아요’ 류의 상담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 이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기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검은집」은 우리나라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룬 본격적인 영화다. 우연히 영화의 자문을 하게 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사이코패스와 사이코, 그리고 정신분열병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필립 피넬이 200여년 전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정신을 의미하는 ‘사이코(psycho)’와 병리 상태를 지칭하는 ‘패시(pathy)’가 합쳐진 용어이다. 정신과 진단명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유사하나, 그보다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극단적인 형태로 설명하기도 한다. 정신분열병과 아직도 혼동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데, 이는 1960년에 나온 ‘사이코(Psycho)'라는 영화가 다중인격과 정신분열병을 혼동해 묘사한 이후, 많은 대중매체들이 정신분열병 환자를 이상성격의 엽기적인 살인마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과 동일시해 표현해 온 영향이 크다.

이러한 배경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위의 개념들을 서로 유사한 것으로 연결시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작동시키는 방어기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연쇄살인과 같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면 쉽게 그들을 타자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라는 의문이 드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들이 발생하였을 때 언론매체들이 보이는 반응과 이어지는 사건 보도들은 대개 천편일률적인 수순을 밟는다. 우선 범인에게 정신병력이 있는지를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 다음으로 범인의 개인사를 추적해 가면서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불행한 어린 시절, 학대 등의 외상 기억, 부모와의 갈등 등이 자주 등장하며, 이들을 한 데 엮은 설명 가설은 직선 화살표의 흐름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 된다. 이렇듯 직선적인 인과론에 의거해 현재의 행동이나 심리상태를 설명하려는 경향은 거의 강박적인 수준이다. 범인을 어떻게든 우리와 다른 성장배경과 병력을 지닌,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규정지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 역시 그동안의 사회적 편견 속에서 항상 타자의 위치를 부여받아왔기 때문에, 연쇄살인과 같은 가공할 범죄를 설명하는 데 쉽게 동원됐던 것이다.

정신의학계의 오랜 논쟁 주제 중 하나인 ‘본성과 양육,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쟁이 최근 사이코패스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것은 유전과 환경,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지만 일부 보도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면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이면에서는 역시 이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과 논쟁이 단지 사이코패스에 대한 일순간의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신질환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까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재원 교수(정신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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