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 수요로 대표되는 경제논리는 전공진입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진입할 수 있는 학과의 정원은 제한돼 있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얻기 위해 학점으로 제 값어치를 올린다. 인기 있는 전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 시장에선 볼 수 없는 조건 하나가 추가된다. 소비자는 공급된 것을 어떻게든 소비해야 한다. 풀어 쓰자면 각 학과의 정원은 채워져야 하기에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공진입 자체를 포기할 수 없으며 원하지 않는 전공이라도 진입해야 한다.

따라서 학과제로 회귀해 이러한 걱정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모집단위 광역화를 반대하는 학생은 인원 제한에 따른 치열한 경쟁을, 교수는 전공 교육의 수준저하와 학과에 대한 소속감 저하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확실히 학과제 선발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학생은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겪었던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일찍부터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학과별 모집은 아직 대학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학생들이 학과별로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은 어떤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대학생활을 좌우하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모집단위의 광역화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추가로 부여하는 제도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분별해내고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학과제 속에서 학생들이 학문을 바라보는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기는 힘드므로 학과를 선택하기 위한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허물어뜨리지 않으면서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의 모집단위 광역화를 유지하되 계열 내에서 학과별 인원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학과별 모집을 실시하되 계열 내에서의 전과는 졸업할 때까지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로이 허용하는 것이다. 학과별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마저도 억지로 잡아두는 것은 단지 학과의 인원 수 채우기, 다시 말해 양적인 현상유지에 불과하며 학문의 성과가 제대로 나올 리 없다. 특정 전공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학문 고사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임민혁 
의학과·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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