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읽으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신문마다 하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달라서 이 신문에선 악당이었던 사람이 저 신문에선 영웅이 되고, 이 신문에선 대문짝만하게 실린 일이 저 신문엔 우표 짝만하게 실리는 일이 흔하다.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생각, 보수적인 생각을 각각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신문 두개를 비교하며 읽으면 찝찝한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다.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두 신문이지만, 아주 똑같은 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자신들이 대표한다는 ‘내편’을 감싸고 반대쪽인 ‘네편’을 비난하는 데만 신문의 모든 역량을 쏟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어떠한 일이 일어나면 해당 신문들이 무슨 기사를 쓸 지는 너무도 뻔하고,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일부 학우는 정말 한쪽은 정의의 사도이고 한쪽은 악당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어떤 사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착한 마음만 가졌거나 나쁜 마음만 가졌을 리가 없는데도, 신문에선 그렇게 표현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다. 두 신문은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세상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줄창 신문 얘기만 해 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우리 학우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모습들을 너무도 쉽게 접해왔다. 언제나 몇몇 높으신 어른들은 자신이 흔들림 없이 옳다는 생각-흔히들 ‘신념’이라고들 하는-만을 가지고 우리 앞에서 뻔뻔하리만큼 내가 진리라고 이야기해 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옳기 때문에 나와 뜻을 함께하는 ‘내편’들은 언제나 옳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도 우린 너무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과연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너무 성역화해 오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나와 내 신념의 팬이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의 팬이 그 사람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넘어가는 것처럼 자기 신념의 팬이 돼서 자신의 오류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의 잘못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시해 버리는 학우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여기에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은 그 이유야 어찌됐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격추시키려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나와 내 생각은 언제나 옳으니까 그에 반대하면 틀리다’는 것은 지나치게 편리한 생각이다. 스타의 팬이나 할 법한 편한 생각.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나, 나의 꿈, 나의 동료들, 어느 하나 완벽할 리 없다. 사람이 하는 일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건 ‘그럴 수 있다’ 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다’에 가깝다. 옳다고 믿는 길을 가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지만,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집밖에 될 수 없다.
 
팬심을 버리고 좀 더 차갑게 평가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말로 옳은 것을 추구한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 평가해야 한다. 당신이 슈퍼맨이 아니고 상대방이 조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모습을 가장 반기는 건 바로 정말 사라져야 할 것들이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악마가 아니고 ‘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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