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위기의 역사에서 오늘을 바라보다 (4) 외환위기와 IT 버블 붕괴

지난 3일(금)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세계적 규모의 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헤지펀드를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국 콜롬비아대 경제학과)는 “세계 정상들이 한데 모여 탈규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했다. G20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원을 현행 2천5백억달러에서 7천5백억달러로 늘리는 등 총 1조1천억달러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지난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뒤 IMF는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군림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번에는 자유방임적인 세계 금융자본을 감독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 속 잠재된 위험
‘과잉자본’과 ‘대외의존도’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의 구제를 받았다. 사실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그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다. 1975년, 1980년에도 심각한 외채위기와 외환부족 사태를 겪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적 파급력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자본 개방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일거에 외국자본이 빠져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관리 감독이 미약했던 것이다. 아시아 정부들은 기업의 해외차입에 대한 통제를 제거하거나 완화했으며 차입과 투자의 조정을 폐지했고, 이에 따라 은행에 대한 감독도 소홀해졌다. 함준호 교수(연세대 국제대학원)는 “한국 정부의 실물부분과 금융부문에 대한 조정겙㉤?권한의 약화로 정부 역할이 축소되는 등 그 당시의 제도적 요소들이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한국 경제구조의 높은 대외의존도가 지목됐다. 김성구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과)는 “미국의 세계지향적인 공업화 정책을 따른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았다”며 “기업 활동을 통한 국제수지 흑자로 외채를 상환해야 했지만 항상 적자가 발생해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수출 지향적 성격이 강한 일본조차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되지 않지만 한국은 그 비중이 80%에 달했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로부터 신속히 회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 시장의 ‘과잉자본’ 문제를 해소했다는 점이다. ‘과잉자본’은 화폐, 생산자본, 상품자본 등의 이윤율 수준이 낮거나 마이너스일 경우를 지칭한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150여조원의 공적자금은 기업의 대출 이자를 처리해주고 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해 주면서 시장의 ‘과잉자본’으로 인한 손실을 떠안았다. ‘과잉자본’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업은 대외 수출이 활성화 돼 결국 한국의 국제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대외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한국 정부는 IMF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부실기업 및 금융 기관에 대한 매각과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에 동의해야 했다. 때문에 한국 경제가 세계 시장에 더 편입됐고 기업 구조조정 시 한국 기업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작은 정부와 각종 시장규제 완화, 민영화와 적극적 개방화, 감세 등을 중요한 정책방향으로 제시하며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펴고 있다. 김성구 교수는 “대외 의존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언제든지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잉 투자가 부른 IT 버블
녹색 성장, 그린 버블 될 수도

외환위기 극복 후에는 IT 버블 붕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IT 버블 붕괴는 1990년대 미국 경제가 IT 혁명 으로 인해 과잉 투자를 한 결과였다. 재고가 쌓이면서 기업들이 도산했고, 기업들의 투명성도 문제가 됐다. 대외 여건 악화로 한국 경제는 수출증가율이 전년 대비 12.7% 감소하고 경제성장률도 3.8%로 하락하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 IT 버블은 정부가 먼저 생산성 향상을 위해 투자를 하고 그후 민간이 투자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 역시 제로 금리에 가까운 상황이다. IT 버블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낮은 금리로 인해 자본이 주식시장으로 흘러간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주가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때문에 최근의 녹색 성장이 IT 버블 같이 ‘그린 버블’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녹색 정책 역시 경기 침체를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스닥시장에서는 바이오, 발광다이오드, 풍력 등 초록물결이 거세다. 이들은 코스닥시장 시가 총액 1~3위를 꿰차고 있다. ‘고속엔진’을 장착해준 건 다름 아닌 국내외 녹색 정책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향후 10년간 청정에너지 사업에 1천5백억달러 규모의 민간투자를 촉진하는 것처럼 현 정부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앞세워 앞으로 20년간 11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동양경제연구소는 그린 뉴딜의 가장 큰 약점은 정부 주도 하에 인위적으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 시장을 만드는 만큼 실제 시장 수요나 가격과 큰 격차가 생겨 버블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린 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위해 정부가 시장가격보다 높게 구매하는 ‘기준가격 매입 제도(FIT)’나 관련 산업 투자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정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녹색 성장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도 안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회복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재차 상승하면 다시 녹색 성장에 투자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IT 버블이 그랬듯이 녹색 성장도 투자의 속도가 실제 시장의 이익과 시차가 생기게 되면 버블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일정 부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면, IT 버블 붕괴의 경우 정부 개입으로 위기가 발생, 심화됐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현 정부는 ‘그린 버블’을 우려하는 연구자들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