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로켓을 발사했다. 만약 로켓의 실체가 인공위성으로 밝혀진다면 북한은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에 이어 9번째로 자력 생산한 위성 발사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 북한의 과학 수준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어 과학 기술 역시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 대비된다. 상반되는 북한의 이미지. 북한의 과학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로동신문」과 학술지로 들여다 본 북한의 과학


북한과학연구원은 군사 과학을 연구하는 ‘제2자연과학연구원(제2연구원)’과 일반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원’으로 나뉜다. 제2연구원은 북한의 국가안보상 그 연구수준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반 과학에 한해서 북한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새로운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 결정한다. 그러나 북한은 당초 이 계획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기초과학과 첨단기술’ 부문보다는 ‘기술개건(낙후시설 개선사업) 및 인민생활’ 부문에 훨씬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이정현 연구원은 “2006년에서 2008년까지 「로동신문」 기사를 분석한 결과 북한은 5개년계획의 후반기 2년 동안 농업 증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각종 과학기술 분야의 학술활동, 대외협력, 남북교류 등은 미진하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이자 선전매체인 「로동신문」의 사설, 정론, 논설 등을 통해 북한사회의 변화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일간지라는 「로동신문」의 특성상 일정기간의 경향성은 발견할 수 있다.

학술지 분석 결과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지위가 신장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경제연구」 2007년 2호에서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짧은 기간에 첨단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강성대국 건설을 담보하는 전초병”으로 규정하고 “과학자, 기술자를 우대하고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과 2008년에는 ‘조러 정보기술 전시회’ 개최 등 각각 6건, 8건의 과학 관련 대외협력 기사가 게재됐는데 주로 러시아, 라오스, 베트남, 쿠바,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제한적 협력이었다.

하지만 학생 교육 개선 정책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말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북한 유학생은 877명이었고 2008년 미국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유학생은 68명이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최현규 책임연구원은 「북한 학술문헌으로 본 북한 과학기술 동향 분석」이란 논문에서 북한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전문학술지 분석을 통해 생명공학을 협력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항목으로 꼽았다. 북한의 생명공학 분야는 식량난 해소와 생태계 보존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거뒀다.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한 복제토끼 클론화 기술이 발표된 2002년에는 BT 관련 문헌이 137건 발표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군사 과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세계적 수준에 뒤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북한은 총 27편의 SCI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해 이정현 연구원은 “그 내용들도 대부분 이론적인 연구에 머물고 있어 해외의 선진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과학 속 잠재된 위험 '주체성'과 '군사과학'

이렇게 북한 과학이 도태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외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몰락했고 대내적으로는 북한경제가 급속도로 침체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현상적으로 북한 과학기술이 퇴보했다면 그 원인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북한의 폐쇠적인 과학 정책이 결국 과학 기술의 퇴보로 이어진 것이다. 김근배 교수(전북대 과학학과)는 “북한 과학 정책자들은 주체성과 자력갱생을 내세웠지만 북한 내부 인력, 물적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공업원료의 60~70%를 국내에서 조달한다는 정책 하에 선진국들이 주력하는 석유화학 대신 비효율적인 석탄화학을, 코크스 대신 무연탄 제철법을, 디젤 대신 전기식 철도차량을 고수했다. 결국 세계의 추세와 동떨어진 과학기술 체제가 자생력과 혁신 역량을 앗아간 것이다. 탈북자 지식인들의 모임인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는 “과학은 비예측적인 특성상 교류를 통해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계와 소통하지 않는 북한의 연구 환경에서는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1980년대 중반까지 외국과 교류를 중단했고, 북한 과학자들의 해외연수나 유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또 민간보다 군사 과학에 치우친 북한 과학의 발달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국방-경제 병진 노선’을 추진해 일반 과학기술보다 국방 과학기술에 더 집중했다. 과학원 내에 ‘국방과학원’이 신설됐고 고급 과학기술자들이 이곳에 우선 배치됐다. 북한의 군수경제 부문은 ‘제2경제’라 불리며 1970년대부터 일반경제와 완전히 분리돼 예산, 편성, 집행 체제를 독립적으로 갖추게 됐다. 북한이 최근 첨단과학의 집약체인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 필요한 과학기술은 그만큼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됐다.

점진자립형의 북한 과학 정책 대외 개방과 민수활성화로

최근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체제 개혁은 중국과 같은 점진자립형의 체제전환국들이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 초반까지 취했던 개혁조치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연구소들이 그들의 운영체계를 개선해 연구 성과를 곧바로 산업 현장과 연계하려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연구소와 기업의 연계를 강화하고 일부 기술시장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는 전반적인 산업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기업이 혁신의 주체가 되고 이를 통한 연구비 투자 확대와 수익 창출의 선순환체제가 구축되기 전에는 그 투입 효율 개선이 극히 어려운 것이다. 북한은 연구비 투입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남북협력팀장은 “과학원의 경우 연구지원금이 2백억에서 3백억 수준인데 이를 백여 개의 연구소가 나눠가질 정도로 그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대외개방과 협력을 대폭 확대해나가는 베트남과 유사한 점진의존형의 과학기술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춘근 팀장은 “이는 자원이 부족한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큰 충격 없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최현규 연구원은 “북한은 부분적으로 중국을 통해 기술을 유입하고 있지만 이것이 계속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여건이 열악한 북한이 일방적인 지원을 받기만 해서는 교류가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북한 과학이 퇴락한 원인으로 지적됐던 군수 분야 집중 육성은 1990년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군수 분야가 일반 경제 분야보다 피해를 덜 받게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북한은 ‘제2경제’를 일반 경제와 분리해 운영하면서 유사시에는 민수 시설을 군수 시설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구축했다. 통일평화연구소 강호제 객원연구위원은 “「로동신문」을 살펴보면 로켓 발사 후 북한은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며 “이 구조를 역으로 이용해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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