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평양과학기술대(과기대)가 또다시 개교를 연기했다. 이번 개교 연기는 2003년 4월 이후로 벌써 10번째다. 북한 로켓발사 등 경색된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섣불리 개교 시점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과기대 설립은 김정일의 ‘상하이 쇼크’에서 비롯됐다. 김정일은 2001년 중국 상하이 푸둥 첨단 산업단지의 눈부신 발전상을 둘러본 뒤 과기대 건립을 추진했다. 김정일의 제안으로 남측의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가 동북아교육문화재단(교육재단)을 세웠고 이후 교육재단이 과기대 사업을 맡게 됐다. 교육재단은 2001년 남북한 정부의 허가를 받은 뒤 2002년 6월 평양에서 과기대 건물공사 착공에 들어갔다. 과기대는 정보통신, 산업경영, 농업식품공업 등과 관련된 3개 단과대학을 우선 운영하고 보건, 건설 부문을 추가할 계획이다. 교수진은 남한 50명, 북한 20명으로 구성된다. 매년 7백여명의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며 우선 대학원생 150명을 선출키로 했다. 현재 16개동 모두 건축이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북한은 공학교육 등 시장논리와 관련 깊은 분야가 북한 사회 내에 자본주의적 사고를 유입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개교를 미루고 있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과학교육에도 주체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체사상은 1960년대 도입된 후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에 의하면 과기대 입학생 면접에서 북한 당국은 입학생에게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부르주아 교수들에게 강의 받을 때 사상적으로 해이해지지 말고 주체적 위치에서 비판적으로 강의내용을 전수받고 필요한 것만 섭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북한 교육의 딜레마를 알 수 있다. 주체사상을 유지하면서도 과학기술 인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과기대 학생 중 3분의 1은 반드시 체제교육을 받은 북한 현지 경제 관료, 공장 및 기업 책임자와 같은 기술자들로 채워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일단 개교가 이뤄지면 과기대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북한경제를 일으키고 남북통일의 초석을 닦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도 남한 교수들이 북한 관료와 기업인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연변과학기술대 김진경 총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과기대 운영은 긴장이 팽배한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기대 운영은 북한에 대한 미 행정부의 불신과 보수 진영의 강경 대응책을 불식시킬 수 있는 평화 카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 배종렬 선임연구위원도 “교육을 통한 북한 엘리트 관료 등과의 교류는 그들에게 남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북간 신뢰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전문 관료 양성은 단기적으로 남한의 개발 경험과 지식의 공유 활용에, 중장기적으로 정보화와 기술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과기대 운영의 투명성 논란, 첨단기술 이전으로 인한 북한 내 군사력 증대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교육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와 같은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시급한 사정을 고려할 때 늦어도 올해 안에는 개교가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과연 과기대가 북한을 수십 년에 걸친 ‘빈곤의 수렁’에서 건져내 남북 교류의 물길을 틀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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