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은 지난 4주간 연재기획 「위기의 역사에서 오늘을 바라보다」에서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경기침체, 아시아 외환위기와 IT 버블 붕괴를 살펴봤다. 이번주에는 마르크스주의 , 케인스주의 경제학자가 모여 지난 4회분의 연재기사를 정리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를 지난 위기에 비춰 통찰하며 앞으로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좌담 일시 및 장소: 4월 8일(수) 오후 6시, 두레미담.

사회: 유철규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유철규 지난 1월 28일 개최된 다보스 포럼까지는 세계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지난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 특히 한국시장에서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대신 외국인 주식 매입이 늘어나고 외환문제도 한 고비를 넘기면서 경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최근의 추세를 위기가 진정되는 조짐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으로 봐야 하는가.

전성인 최근 시장 기류가 호의적으로 변한 것은 G20 회의에서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경기부양에 대해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등 대책 마련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바로 위기 극복으로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경기가 회복될 것이냐의 문제는 앞으로 어떤 조치들이 실제 시행되느냐에 달렸다. 단순하게 시중에 돈을 푸는 형태로 경기부양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김성구 각국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금융부실과 신용경색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고 이에 따라 이번 금융위기도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 실물경제에 있는데도 실물경제의 위기가 어디까지 진행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과잉자본의 문제가 불거지는데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공황’은 바로 이 과잉자본이 해소되는 과정이다. 이는 주로 시장원리에 의해 진행되지만 정부의 개입이라는 변수도 있다. 시장 방식의 청산과 병행해 국가가 손실을 떠안는 일종의 사회화를 통해 과잉자본을 처리하는 과정이 어떤 속도와 규모로 진행될 지를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철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번 위기가 경기순환의 침체국면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번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패널: 김성구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김성구 마르크스주의에서 일반적으로 ‘공황’이라고 부르는 경제위기 국면은 10년 주기로 발생해왔다. 19세기부터 주기적으로 일어나던 공황은 2차 대전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두번,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에 각각 한번씩 공황이 찾아왔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공황도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는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일반적인 공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래 공황이 끝난 이후 급속한 호황이 찾아와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는데, 1970년대 이후로 공황 국면은 심화되는 데 비해 호황 국면은 약화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10%대 실업률이 지속되는 등 대량 실업이 구조화됐다.

이렇게 정상적인 경기순환을 넘어 위기가 구조화된 경우를 ‘구조적 위기’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70년대 이후의 위기처럼 이번 경제위기도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에 봉착한 케인스주의의 대안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지만, 신자유주의는 지난 30년간 구조적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에 대한 해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철규 신자유주의는 일상적인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는 체제 아닌가. 그런데도 지난 30년간 구조적인 위기가 별반 해소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어떤 의미인가.

김성구 구조적 위기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황 국면에서 해소됐어야 할 과잉자본이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과잉자본을 해소해 산업에 대한 투자가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게끔 하는 구조조정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구조조정은 실물부문 과잉자본이 금융부문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과잉자본이 만성화됐고 오늘 위기로 이어졌다.

유철규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지출 확대 등 케인스주의적 해법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은 신자유주의 정부하에서도 이뤄진다. 케인스주의 정책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케인스주의 정책의 요체가 무엇인지 논의해보자.

전성인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는 시장의 완전성에 대한 견해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두 정책 모두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은 인정하지만 케인스주의는 시장을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한다. 따라서 정부가 시장을 감독, 관리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기의 경우 단순히 시장에 유동성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일으킨 원인을 파악해 이에 대한 제도적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케인스주의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왜곡된 신용평가로 위기를 증폭시킨 신용평가사에 대해 조치를 취한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김성구 케인스주의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좌파적인 철학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경제에 도입된 케인스주의는 재정확장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좁은 범위에서만 적용됐다. 좌파 케인지언들은 유효수요 창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윤추구 활동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케인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케인스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라 ‘케인스주의’란 이름으로 무엇을 요구하느냐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의 케인스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시장논리에 따른 단순한 이윤추구를 넘어 국가부문과 공기업의 확대, 강화를 통해 투자를 사회화해야 한다.

유철규 마르크스주의자를 포함한 좌파 경제학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이 금융규제, 국유화, 조세문제에서 많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읽다가 ‘투자의 사회화’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유철규 마지막으로 이번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겠다. 요즘 주목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왜 현 정부는 별 위기감이 없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삼성전자가 살아남았고, 현대차도 수출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혹은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규제완화나 감세정책이 계속해서 추진됐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질 지에 대해 의견 부탁드린다.

전성인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 악화된 소득재분배 구조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자 전 세계적으로 증세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오히려 감세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분명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이 유권자에게 약속한 감세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정치적 차원에서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어떤 논리로도 납득할 수 없으며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올해 예산을 편성한지 몇 달 만에 세수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추경예산을 10조원 이상 편성하지 않았나. 이는 현 정부가 효과가 미미한 부자감세를 추진하기 위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김성구 이번 위기는 10년 전 외환위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환위기 때는 경상수지의 대규모 적자와 함께 우리 기업과 은행이 부실화돼 위기가 불거졌지만 이번 위기는 선진국 시장에서 발생한 위기의 여파가 세계경제에 연동된 한국에 닿은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과 재벌의 부실을 털어내면서 구조조정이 진척됐고 만성적자이던 국제 수지는 지난 10년 동안 흑자 기조로 전환됐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내부적으로 아직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경제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면 궤도 수정 논의가 불가피했겠지만, 이번 위기는 우리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위기감이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현재 궤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오늘날 선진국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그 결말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성인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효율성의 유일한 원천은 경쟁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경제에서는 경쟁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 교수님이 말씀하신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독점자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재벌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 정책, 가령 금산분리나 출자총액제가 완화되면 우리 경제에서 경쟁으로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경제주체가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AIG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다시피 특정 경제주체가 너무 거대화되고 이로 인해 전체 경제구조에 깊숙이 연계됐을 경우 막상 위기가 찾아오면 외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AIG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어쩔 수 없이 돈을 넣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G20을 포함한 각국 정부는 거대한 경제주체의 탄생을 막기 위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 부분에서도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금산복합체가 탄생할 것이고 이들이 흔들린다면 국민경제 전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분리하거나 적어도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제학이 역사를 통해 증명한 바는 경쟁이 치열할 경우 당사자는 비록 괴로울 수 있더라도 체제 전체적으로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소규모 경제 주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전체 경제도 단련될 수 있는 체제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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