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최근 강화된 군사력을 뽐내려 국제 관함식을 개최한 바 있다. 이처럼 중국은 세계 3위로 부상한 경제력과 함께 강대국으로서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현 상황을 반영하듯 한국 사회의 여론은 이미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패권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관계, 동아시아 내 중국의 정치적 움직임, 위안화의 지위를 높이려는 중국의 경제적 행보, ‘군사강국’을 표방한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서 이 같은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학신문』은 현 중국의 객관적 위상을 파악하려 한다. 또 현재 한국의 대중국 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 봤다.

세계의 ‘슈퍼파워’인 미국과 ‘라이징파워’인 중국은 최근 중국의 군사력 강화, 티베트 인권 문제, 중국의 기축통화 변경 주장 등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양국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전략을 통해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의 관계를 추구하기로 했지만 현실은 이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외교정책
미, 중 간 갈등 일으켜

중국이 현재 펼치고 있는 ‘화평굴기(和平起)’ 정책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정책과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굴기외교는 대국으로서 부상하는 중국이 ‘굴기’(起,, 우뚝 솟은 모양)처럼 자신의 역할에 걸맞게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굴기외교는 스인훙(時殷弘) 교수(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과)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오바마 정권 출범에 즈음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의 대미 정책은 협력을 강화하고 마찰을 줄이는 것이 기본원칙”이라면서도 “맞서 싸울 때는 맞서 싸우고 원칙을 고수해야 할 때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태도를 바꾼 주된 요인으로는 미국이 최근 경제위기로 급속하게 패권을 잃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이 차기 패권국의 자리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미국에 날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경제적으로 달러화를 대체해 새로운 기축통화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 간 연합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내보이는 일련의 움직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지역통화 자리
점하려는 중국

최근 중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삼자고 주장했는데, 그 이면에는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중국의 의도가 숨어 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은 중국 인민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SDR이 국가를 초월하는 슈퍼통화가 될 가능성이 있고 지금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라면서 SDR을 달러 대체통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SDR이란 개별국가들이 국제수지적자를 메우기 위해 IMF로부터 무담보로 인출할 수 있는 무형의 통화로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유로화, 일본 엔화의 시세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대외정책연구원 윤덕룡 선임연구위원은 “SDR 구성 통화 속에 위안화를 포함시켜 위안화의 국제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중국의 입장은 위안화도 SDR 구성 통화와 비슷한 위상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위안화가 SDR 구성 통화에 포함되면 국제적으로 위안화의 지위가 인정되는 것인데, 중국은 이를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할 때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중국은 ‘SDR 기축통화론’을 주장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초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위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위안화의 국제화 방침을 공식화 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발맞춰 3월부터 홍콩과의 무역거래에서 위안화를 결제 통화로 사용하도록 허용했고 최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연안 5개 경제 도시에서 무역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물론 위안화의 국제화가 당장 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위안화의 위상을 ‘결제통화-지역통화-기축통화’의 순으로 격상시키려 한다. 지난해 10월 중국은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이고 위안화와 루블화의 사용을 확대키로 합의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중국과 대만 간 ‘국공회담’에서는 양측의 무역결제통화를 달러 대신 양측 통화로 대체키로 결정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현재 아시아 통화 외환거래량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엔화의 거래량은 2004년과 비교했을 때 1.4배 늘어난데 비해 위안화 거래량은 8.4배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증가세가 계속된다면 위안화는 머지않아 지역통화로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그러나 기축통화가 단순히 경제규모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안정성, 통화를 거래할 수 있는 국제금융시장 등이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하면서 전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지만 중국의 역량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며 “당분간 달러 중심의 통화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중국은 현재 동아시아 내에서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정치적인 주도권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부문을 동시에 잡아 동아시아의 주도국으로 자리 잡으려는 것이다. 박현수 연구원은 “세계 경제질서 재편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과소평가 됐던 중국의 경제기반이 인정받으면서 중국은 발언권을 강화하는 한편 역내에서 패권 국가적 성격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내 강자
노리는 중국

중국은 2000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동아시아 내에서 다자 간 협력을 구체화해 오고 있다. 이 같은 협력을 기반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n Summit, EAS)를 설립하려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중심에 중국이 자리 잡고자 하는 것이다.

EAS는 ASEAN 10개국과 한, 중, 일 3개국이 모여 개최하는 ‘10+3회의’에서 처음 구상됐다. 1990년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가 동아시아경제협의체를 제안하며 시작된 EAS는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좌절됐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탄생 등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국제적 블록화가 진행됨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도 지역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후 역내 국가들은 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시 EAS를 구상했다.

2002년 열린 ‘10+3회의’에서 EAS 구상이 통과된 후 중국은 EAS의 조기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한석희 교수(연세대 국제대학원)는 “중국은 EAS 개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함으로써 역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향후 EAS 운영에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0+3회의’는 ASEAN 10개국이 회의를 개최하면 동북아 3국이 참여하는 형태지만 EAS에서는 동북아 3국도 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이 EAS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이 동아시아 국가에 표명했던 입장과 대비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동아시아 협력 과정에서 지도국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데, 이는 다른 주변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른바  ‘중국위협론’의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한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이 ‘10+3회의’에 기반을 둔 EAS를 형성하려는 이유는 역내에서 중국의 활동이 제약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5년까지 9차례 개최된 ‘10+3회의’에서 미국 등 패권 국가의 견제를 받지 않았고 대만 이슈로 인한 곤란을 겪지 않았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EAS 구상을 추진하려는 이유다. 동아시아 내 중국의 영향력 확장 의욕은 현재진행형이다.

부상하는 중국
딜레마에 빠진 한국

중국의 역할과 위상은 나날이 커져가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와중에 섣불리 한 국가를 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중국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저지른 외교적 실수는 이 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기획재정부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개념과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선제적인 대외 경제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식 발전 모델’을 개도국에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의 보고서에 중국 언론과 정부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외교적으로는 ‘큰 문제’를 내포한 문건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에 맞설 전략으로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식 발전 모델’을 거론한 것과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응’한다는 표현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민주화’를 건드린 동시에 중국 경제 전략의 확산을 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상진 교수(광운대 국제협력학부)는 “한국이 중국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이 중국과 맺은 통화스와프에서도 한국은 중국 측 경제 전략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중국은 한국과 최초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는데, 이는 위안화 국제화의 이정표가 됐다. 이번 통화스와프는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지는 와중에 찾아온 기회를 한국이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김재철 교수(가톨릭대 국제학부)는 “중국이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을 한국 정부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축으로 중국 문제에 다가서려 하나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다는 기존 방침의 유용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쉽사리 기존 한미동맹을 저버리고 중국과의 동맹을 강화할 수도 없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김재철 교수는 “어느 한 국가와의 관계를 축으로 다른 국가를 제어하려 들기보다 양자 모두와의 관계를 증진시킴으로써 우리의 이익을 구현할 여지를 확대하는 것이 변화된 상황에서 보다 더 실용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현재로선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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