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영화감독 김기덕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쪽에 검은 모자, 검은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시상식, 영화 촬영장 어느 곳에서든 항상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을 단박에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의 영화에 대한 숱한 논란과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식 영화’를 고수하고 있는 그의 뚝심이 드러나는 옷차림이다.


‘김기덕식 영화’는 창녀, 불우한 가족과 변태적 사랑,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 군인, 원조교제 등 파격적이고 특이한 소재를 극단적이고 가학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김기덕식 영화’는 무엇일까. 그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왜 상처를 주고 받거나 약자에 빌붙어 기생하는 인물과 같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주로 등장시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기자는 창녀나 깡패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재력과 권력 구조의 테두리 안에 있는 ‘인사이더’들이 내 영화의 주인공인 ‘아웃사이더’를 보면 희망이 없다고 하겠죠. 재력과 권력이라는 무장을 하고 있는 인사이더가 아웃사이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재력과 권력의 테두리 밖에서, 극장에도 가지 못하고, 문화의 ‘문’자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절반이에요. 저는 그들을 삶을 다루고 있죠.”


그는 젖가슴을 도려내고, 낚시 바늘을 삼키고, 송곳으로 눈을 찌르는 등 극도로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이미지들로 그 ‘아웃사이더’를 표현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단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싫고 좋은 것, 무섭고 안 무서운 것을 판단하며 영화를 보죠. 이러한 부분적인 인식이 영화의 다른 면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듭니다”라며 자신의 영화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관객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표현을 유하게 했으면 좋겠다’, ‘설득력을 더 이끌어 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주문은 편견이자 오만입니다. 흰색을 보고 자란 사람이 검은 색을 보고 ‘너무 검다’며 ‘검은 것만 조금 줄이면…’ 하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내 색깔’인 흰색과 가까운 색을 보여 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이는 반대로 검은 색을 보고 자란 사람이 흰색을 보고 ‘너무 희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인간에 대한 부분적 인식으로 내 영화 재단하지 말라”
“내 방식으로 아웃사이더를 표현할 뿐 …
비주류 강조하거나 대변하려는 것도, 제도권 전복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 영화는 비주류를 강조하거나 대변하는 것도, 제도권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라며 “다만 제도권의 원칙이 일방적으로 모든 삶을 지휘하고 있는, 그래서 주류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이 사회의 불공정한 시소게임이 불편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찌그러져 있는 아웃사이더를 그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인간 안에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다양하고 애매모호하게 혼재하고, 그것이 스펙트럼처럼 드러나는 것이 우리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감독. 그가 진정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주류와 비주류를 넘어서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애매모호함을 이해하고 이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를 끝으로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한때 목사가 되고자 총회신학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고, 서른이 넘어 빈손으로 프랑스로 그림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다. 이런 이력에서 축적된 경험들로부터 영화의 소재를 얻는다는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95년 각본 「무단횡단」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수상하면서이다. 그 이후 「악어」를 시작으로, 「섬」, 「수취인 불명」, 「나쁜남자」, 「해안선」을 비롯해 얼마 전 베를린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한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영화를 쏟아내면서 줄곧 저예산 영화를 고집해왔다.


요즘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은곰상도 탔으니까 이제 돈 벌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영화 서너 편 만들고 나서 오락영화든 뭐든, 흥행 영화를 만들어 강우석이나 강제규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며 “그러나 그 주류의 시스템이 내 생각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삶 이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편안히 웃음과 눈물을 길들이며 ‘쓸어담기식 노예관객’을 양산하고 있다”며 ‘천만 관객 시대’의 한국 영화판을 신랄히 비판하는 그에게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인간에 대한 문제를 ‘김기덕식’으로 천착해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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