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와 노무현 사태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
권력구조를 청산하기 위해선
침묵과 무관심 아닌 참여 필요

김의연 부편집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초선의원으로 5공 청문회에서 맹활약한 최고의 청문회 스타이자, 누구도 감히 반대 못했던 야합 3당 합당을 거부한 원칙의 정치인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시장·국회의원에 출마해 자살행위라는 말을 듣고 낙선한 소신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부정축재로 범벅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던진 그였다. 정치 파벌을 이룬 적 없던 그였다.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라고 말했던 그였다. 검찰에 소환되는 그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실망과 분노를 자아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모두의 시선이 노 전 대통령에 쏠려있다. 최근 그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은 그를 법정에 세워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거나, 이미 정치적 고인이 됐으니 법정에 세워 부관참시할 것 없이 고인의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그의 ‘형량’이나 ‘체면’에 관련된 이야기 정도다. 그러나 그의 재판과 사법처리 수순을 논하고 전직 대통령의 체면을 운운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논쟁인가.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체면과 형량이 아니다. 이것은 노무현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제가 갖는 한계, 즉 대통령의 폐쇄적 특권에 대한 견제와 자정 능력의 결핍이 낳은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5년 단임제가 갖는 생래적이고 치명적인 약점,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한국의 정치 구조상 대통령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청와대 비서진, 정서적으로 가까운 친인척·측근에게 권력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9명의 대통령 가운데 상처 입지 않은 대통령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노무현에게만 분노하지 말자. 그러기엔 분노의 대상이 너무 협소하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을 비롯해 공직에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박연차 같은 자들에게 ‘차떼기’로 검은돈을 ‘투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권력형 비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겹게 재방송되는 권력형 비리는 권력층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혐오를 누적시켰다.

혐오는 무관심으로, 무관심은 침묵으로 이어진다. 침묵을 먹고 크는 비리라는 구더기는 계속해서 이 사회 속에 꼬여왔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이 나왔을 때, 아니 1997년 대선 때라도 차단했다면, 늦었지만 2002년 대선 비자금만 엄정하게 다뤘어도 이런 검은돈 파티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서 봤자 뿌리 깊은 비리를 발본색원할 수 없다는 비관론은 권력형 비리의 온상이었다. 권력형 비리는 바로 이런 침묵·비겁·비관론을 먹이로 무럭무럭 자랐다. 너도나도 박연차를 따라 배워 기꺼이 공직자들에게 돈을 주려고 한다. 교환가치가 있는 그 어떤 권력도 돈이 됐다. 이 시스템은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노무현은 박연차의 돈이 아니라 우리의 침묵을 먹은 것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인가. 아니, 구조의 문제다. 아니, 우리 모두의 문제다.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처럼 수천억원도 쓸어 담을 수 있는 권력 구조를 구조적으로 청산해야 한다. 이르면 하반기부터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 논의가 본격화된다. 현재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와 권력분점형 정부형태 등 2개 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물론 위에 나온 안으로 이 모든 구조적 문제가 한방에 해결될 리 없다. 최선의 선택인지도 불확실하다. 다만 이것은 확실하다. 이번에도 무관심과 침묵의 공기가 흐른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이 넌더리나는 재방송을 또 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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