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지난 7일(목) ‘2009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열렸다. ‘전환기, 근대문학의 모험’을 주제로 한 이번 기념문학제는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됐다.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1909년에 태어난 문인들을 대상으로 1930년대 문학지형을 살펴봤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상호 진화의 역사=1930년대 문학은 문제적이다. 한편에서는 1930년대를 ‘순수문학의 황금시대’로 찬미했고 다른 편에서는 ‘탈이념의 수렁에 빠진 시기’로 애도했다. 최원식 교수(인하대 인문학부)는 ‘전간기문학의 기이한 진화’란 발표에서 “1930년대 논쟁을 통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은 상호 진화했다”고 말했다.

모더니스트는 식민지 조선에서 현대성을 찾으려 했으나 당시 조선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의 시도는 비현실적이었다. 결국 모더니즘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는데, 대표적 모더니스트로 꼽히는 박태원은 청계천변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식민지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는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방의 필요성을 끌어냈다. 서발턴은 어떤 혁명이 일어나도 생길 수밖에 없는 소수자다. 모더니즘은 ‘민중’에서 ‘소수자’로, ‘관념’에서 ‘일상’으로 문학의 관심을 옮겨놓았다.

모더니스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지만 자본주의를 그 해결책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더니스트는 ‘도시의 아들’이었지만 ‘도시의 삶’을 찬미하지도 않았다. 모더니즘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 일상의 공간에서 투쟁, 혁명, 이상 등 1920년대 리얼리즘이 중요시했던 요소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일상의 혁명이 진짜 혁명임을 깨달았다.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이상의 「날개」 역시 일상의 찬미에 그치지 않고 작품 결미에서 ‘날개야 돋아라’라고 외치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최 교수는 “혁명적 낭만주의의 패배 이후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계 문인들 또한 리얼리즘의 새 길을 찾는 진지한 실험에 투신함으로써 1920년대보다는 한결 뛰어난 작품을 생산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이기영의 「고향」과 김난천의 「대하」를 꼽았다. 또 최 교수는 “1930년대와 현재 사이에 강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며 “현재 해체서사, 미래파 시로 대표되는 신세대문학과 기성문학의 관계를 1930년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신세대 문학과 기성문학의 관계 역시 ‘상호 진화’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생 100주년 맞아 김내성, 김환태, 이원조 등 다양한 문학인 조명받아=문학평론가 조성면씨는 ‘김내성과 장르문학’이란 발표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문학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했던 김내성을 조명했다. 장르문학은 소위 ‘순수문학’과 구분되며 추리, 과학, 모험, 무협소설 등을 지칭한다.

김내성은 습작 단계에 있던 한국 창작 탐정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대표작인 『마인』은 채만식의 『염마』 등의 아마추어리즘과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 등 미성년 상태의 소년 탐정소설에서 벗어난 본격 장편 탐정소설이고 이를 통해 장르문학으로서의 창작 탐정소설이 궤도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조성면씨는 “문학이 소수의 특권계급을 위해 존재하는 엘리트 예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다수자를 위안하고 위로하는 것이 문학의 당위”라며 “순수나 대중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문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김내성 문학의 특장(特長)”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내성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의 작품이 장르와 실제 현실 사이의 불일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생일파티로 가장무도회가 열린다는 설정은 리얼리티를 손상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인』이 널리 읽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내용을 받아들일 정도로 당시 현실 부정의 열망이 강렬했음을 보여준다. 조성면씨는 “그가 한국문학사에서 미지의 영역이었던 장르문학의 발전에 기여했고, 이 과정에서 대중성을 성취했다는 것만큼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정일 교수(원광대 한국어문학부)는 ‘순수문학 논쟁을 다시 읽는다’라는 발표에서 1930년대 순수문학 논쟁에 참여했던 문학비평가 김환태와 이원조를 중심으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설명했다.

1930년대 카프가 해산되면서 계몽문학은 동요에 빠졌고 자율성문학이 떠올랐다. 이 와중에 순수문학 논쟁이 벌어졌다. 김환태는 ‘사회생활로부터의 예술의 자유’를 예술의 순수성의 필수조건으로 제시했다. 그가 「순수시비」에서 문학적 순수의 핵심 지표로 꼽은 것은 인간성 탐구와 창조적 표현이다. 이원조는 김환태가 문학의 순수성의 요체로 ‘표현’을 내세운 것을 비판했다. 시대에 대한 고민과 부정적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문학을 위해 사상을 받아들이면 순수이고 사상을 위해 문학을 하면 비순수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 교수는 “순수의 구체적 의미에 대한 김환태와 이원조의 상반된 해석을 통해 순수문학의 논쟁에 계몽의 문학과 자율성의 문학의 역사가 함축돼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신석초, 모윤숙, 현덕 등에 대한 조명이 이뤄졌다.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텍스트가 아닌 노래, 마임, 판소리 등 다양한 예술 형태로 즐기는 자리도 마련됐다. ‘문학의 밤’ 행사에서는 신석초의 「멸하지 않는 것」이 노래와 무용으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가 영상과 마임으로 재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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