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동향] 일본의 ‘대중적 사회과학서’

대형 서점에 처세, 실용서 코너가 따로 생길 만큼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일본의 ‘대중적 사회과학서’가 신속히 번역, 출판되고 있어 이채롭다. 사회과학서가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중에 『성난 서울』, 『가난뱅이의 역습』,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 등이 선전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대중적 사회과학서가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대중은 IMF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일련의 경험을 통해 자기계발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래서 구조적 모순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대중적 사회과학서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일본과 한국 사회의 유사성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김태정 교수(한국외대 일본학과)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인 국가는 사회 현상에서 유사성을 갖는다”며 “특히 한국과 일본은 같은 동아시아권에 속하기 때문에 사회, 문화적 요소가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사회 현상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일본에 ‘로스 제네(lost generation의 줄임말)’가 있다면 한국에는 ‘88만원 세대’가 있고, 일본에 ‘넷카페 난민’이 있다면 한국에는 ‘고시촌 난민’이 있는 식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정부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서 파견노동, 프리터,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일본 사회의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현재 한국도 비정규직 비율이 이미 50%에 이르렀고 정부는 노동 유연화를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더 늘리려 하고 있다.

『성난 서울』과 『가난뱅이의 역습』 등의 책은 ‘운동과 투쟁을 유희적이고 게릴라적으로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용산 참사와 같이 진지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를 유희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발성의 대중적 사회과학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론서도 함께 출판돼야 한다. 꾸리에 출판사 강경미 대표는 “『성난 서울』 등이 생활 속에서 맞부딪치며 느끼는 문제를 다루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사유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이론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경미 대표는 “일본 서점에서는 빈곤 코너가 크게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빈곤 코너가 자리 잡을 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출판계는 앞으로 도 다양한 형태의 일본 서적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꾸리에 출판사는 가가카미 하진의 『빈곤론』을 번역, 출판할 예정이다. 저자는 1910년대 일본 전후 좌파의 대부 격인 경제학자로, 산업혁명과 1차대전을 겪으면서 빈곤문제를 경제학에 도입했다. 마코토 유아사의 『반(反)빈곤』도 검둥소 출판사에서 올해 10월쯤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마코토 유아사는 일본 ‘반빈곤 네트워크’의 사무국장으로 양극화에 무감한 정치에 맞선다.

13일(수)부터 17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 때마침 일본이다. 일본 출판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일 도서진흥 현황과 출판문화의 미래’, ‘일본 베스트셀러 경향과 국내 유입 동향, 그리고 전망’ 등 일본 출판관련 세미나에 찾아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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